세입자가 甲…"이젠 갱신요구권 안써요"

입력 2023-02-03 17:35   수정 2023-02-04 01:00

“어차피 전세 보증금을 2년 전보다 깎아줘야 하는 상황이라 굳이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쓸 필요가 없어졌습니다.”(서울 마포구 아현동 A공인 관계자)

급격한 전셋값 인상을 막고 임차인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전·월세 계약갱신청구권’ 제도가 무색해지고 있다. 전셋값 하락 여파로 임차인 우위 시장이 형성되면서다. 갱신요구는 급감하고 감액계약과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비율이 늘고 있다.

○머쓱해진 계약갱신청구권
3일 부동산중개업체 집토스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주택(아파트, 오피스텔, 연립, 다가구, 단독주택 포함)의 갱신청구권 사용은 역대 최저치인 6574건을 기록했다. 지난해 1월(1만4119건) 대비 53.4% 감소했다. 12월 사용 비중은 전체 전·월세 갱신계약의 36%를 차지했다. 나머지 64%는 합의에 의한 재계약이었다.

전·월세 계약갱신청구권은 임대차 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 임차인이 계약갱신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임차인은 청구권을 한 번만 쓸 수 있고 임대인이 청구권을 접수하면 전세금을 5% 이상 올릴 수 없도록 한 것이 골자다. 전셋값 상승 압박이 거셌던 2020년 7월 제도 도입 직후 전세 매물이 급감하면서 전세 가격이 급등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가격 하락이 본격화된 지난해 하반기부터 사용률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1월 청구권을 사용한 계약은 1만4119건(전체의 58%)에 달했다. 2월 1만6255건으로 올랐다가 3월부터 계속 감소세를 보였다. 9월에는 합의재계약과 청구권 사용 비율이 50 대 50으로 같아졌고 10월부터는 합의갱신 비율이 더 높아졌다. 진태인 집토스 아파트팀장은 “역전세난 속에서 갱신을 원하는 세입자가 청구권을 사용하지 않아도 임대인과의 협의가 원만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계약 해지 쉬워 감액 갱신계약도 32%
세입자들은 갱신청구권을 종전 계약 임대료보다 금액을 낮춰 재계약하는 데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갱신청구권을 사용하면 5% 이내에서 전세금 증감이 이뤄지는데 감액한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12월 갱신청구권을 사용한 갱신계약 중 종전보다 임대료를 감액한 계약은 1481건으로 전년 동월(76건) 대비 19배 이상 급증했다. 갱신청구권 사용 계약의 32%가 감액계약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증금 증액이 아닌 감액을 하는데도 갱신권을 쓰는 임차인이 나오는 이유는 합의 계약보다 유리한 조건 때문이다. 세입자가 언제든 해지 통지 3개월 후 이사할 수 있는 조항이 있어서다. 큰 폭으로 보증금을 깎기는 어려워도 세입자가 계약해지권을 좀 더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세를 월세로 바꾸는 갱신계약도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하반기(6~12월) 수도권 전·월세 재계약 중 전세를 월세로 변경한 재계약은 5971건으로, 전년 동기(3572건) 대비 6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집값 하락세에 전세보증금을 지키기 어렵게 되면서 전세보다 월세를 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월세 거래 증가도 두드러진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의 ‘서울 아파트 월세 거래량’은 보합 후 소폭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월 8229건이었던 월세 거래량은 7월 8901건으로 소폭 늘었고, 10월 7701건으로 떨어졌다가 12월에 다시 8831건을 기록했다. 아파트 월세 거래량이 큰 변동 없이 월 7000~8000건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진 팀장은 “올해 수도권에 대규모 공급이 예정돼 있는 만큼 주택 임대 시장의 감액 갱신 및 갱신청구권 감소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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