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와 프랑스 프로방스는 공통점이라곤 하나도 없는, 서로에겐 딴 세상 같은 곳이다. 콘크리트 빌딩들로 가득찬 여의도가 대한민국의 돈·정치 중심지라면, 눈부신 햇살과 지중해 바다를 머금은 프로방스는 빈센트 반 고흐, 알퐁스 도데 등 수많은 예술가의 고향 같은 곳이다.
이런 상극 같은 두 도시가 만나 하나가 됐다. 3일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 6층에 있는 ALT.1(알트원) 전시장에서 개막한 프로방스 출신 작가 다비드 자맹(52·사진) 개인전을 통해서다. 이번 전시의 키워드는 두 가지, ‘프로방스’와 ‘행복’이다. 프로방스에서의 삶을 행복으로 여기는 자맹에게 이 두 단어는 같은 의미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행복한 느낌을 건네는 따뜻한 햇살과 푸른 하늘, 지중해의 훈풍이 녹아 있다. 그의 작품전이 열릴 때마다 ‘보면 기분 좋아지는 그림’이란 감상평이 붙는 이유다.
알트원은 더현대서울 개관 후 2년간 50만 명 넘는 미술 애호가가 찾은 인기 전시관이다. 전시를 주최한 한국경제신문과 비아캔버스는 중소형 미술관(약 1160㎡) 규모의 공간을 자맹의 작품 130여 점으로 꽉 채웠다. 2년 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먼저 열었던 자맹의 전시(‘내면 세계로의 여행’)가 ‘역대급 흥행’을 거둔 걸 감안해 더 크고, 더 가기 편한 곳으로 바꿨다. 작품 수도 2년 전(52점)보다 세 배 많이 갖고 왔다.
전시장은 프로방스 정취로 가득하다. 자맹의 아틀리에를 모티브로 꾸민 입구를 지나면 그가 그린 올리브 나무와 마을 광장의 풍경, 동네 시장의 붐비는 모습 등이 벽을 가득 채운다. 1970년 프로방스의 작은 도시 님에서 태어난 자맹은 10세 때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 북부로 이사간 뒤 30년 넘게 고향의 햇살을 그리워하며 그림을 그렸다. 그가 다시 프로방스로 돌아온 건 작가로 성공을 거둔 2013년. 그는 “프로방스로 돌아온 건 내게 다시 태어난 것과 같은 행복을 줬다”고 했다.
자맹이 창조한 캐릭터, ‘댄디(멋쟁이)’가 음악에 취해 춤을 추는 작품들을 프로방스 풍경 바로 다음에 배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표 시리즈인 ‘내면 자화상’은 내면의 자유와 흥취를 표현한 작품들이다. 작품 설명 옆 QR코드를 휴대폰으로 찍으면 작품과 어울리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예컨대 ‘내면 자화상’ 작품 옆에는 각자의 개성이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담은 방탄소년단(BTS)의 ‘소우주’가 짝지어져 있다. 멜론이 음원을 협찬했다.
‘내면 자화상’을 둘러본 관람객들을 기다리는 건 하늘색 통로다. 고흐의 ‘꽃피는 아몬드 나무’를 모티브로 꾸민 길이다. 봄이 오면 아몬드 나무가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뜨리는 프로방스의 정취를 여의도 빌딩 숲에서 느끼도록 준비했다. 이곳에는 고흐를 비롯해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진가 윌리 로니스, 피카소 등 프로방스를 사랑한 선배들의 걸작들을 오마주한 자맹의 작품을 만나게 된다.
자맹의 별명은 ‘행복을 그리는 화가’다. “예술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에 걸맞게 자맹의 작품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행복이 가득 담겨 있다. 캐릭터 댄디의 턱에 있는 큰 점은 아내의 얼굴에 있는 점에서 따왔다. 전시장 한쪽에 건 아이들 그림은 두 자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작품이다.
자맹은 그림을 통해 자신이 그리고 있는 행복을 넓혀나가고 있다. 지난해부터 리오넬 메시, 타이거 우즈 등 스포츠 스타들을 그린 ‘더 그레이티스트’ 연작을 발표하고 판매 수익금으로 청소년 암 환자를 돕는 게 대표적 예다.
자맹은 이번 전시에서도 자선 경매를 통해 행복을 나누기로 했다. 자맹은 이번 한국 전시를 기념해 손흥민 김연아 김연경 박찬욱 윤여정 등 한국 대표 스타 5인을 그린 ‘한국의 별’ 연작을 그렸고, 이 작품 중 일부를 이달 중순 자선 경매에 부칠 계획이다.
반응은 뜨겁다. 티켓 사전판매를 시작하자마자 인터파크 전시부문 예매 순위 1위를 차지했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과 함께 최상위권에 계속 머무르고 있다. 전시장을 찾은 루도빅 기요 주한프랑스문화원장은 “훌륭한 프랑스 작가를 한국 관객에게 소개할 기회가 마련돼 감사하다”며 “프로방스의 정취를 그대로 살린 전시 구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전시는 4월 27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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