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 코스닥 시장…'CB 공장' 등치는 CB 알박기 세력 등장

입력 2023-02-08 15:47   수정 2023-02-09 11:32

이 기사는 02월 08일 15:47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전환사채(CB)는 주식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현금으로 갚아야 한다. 발행 1년 뒤 CB 빚은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반면 CB 투자자가 주식으로 전환해 시장에서 팔면 빚은 사라지고 자본은 늘어난다. 코스닥 기업은 어떻게든 시장에서 CB가 소화되기를 바란다. 사모 CB 재매각이 잇따르는 이유다. 이런 코스닥 기업의 약점을 파고든 '알박기' 세력이 등장했다. CB 처분금지 가처분 소송을 걸어 기업의 손발을 묶는 식이다. 한국거래소가 가처분 소송만 들어오면 CB 주식 상장을 막는다는 점을 악용하는 것이다. CB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촌극'이다. 코스닥 시장이 점점 혼탁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말 코스닥 디스플레이 검사장비업체 소니드 주주 3명은 회사를 상대로 CB 처분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CB 재매각, 주식 전환, 주식 상장 등을 제한해달라는 내용이다. 소니드는 2021년 500억원 규모의 사모 CB를 발행했다가 만기 전에 300억원 이상을 상환해줬다. 그리고선 CB를 재매각해 자금을 마련하던 중이었다. 소니드 주식 10주를 가진 주주들의 소송으로 CB 재매각은 중단됐다. 한국거래소가 가처분 소송이 제기되면 기계적으로 상장을 유예하기 때문이다. 거래소는 이날 상장 예정이었던 소니드 주식 27만7469주의 상장 유예를 결정했다. 채권자가 1월 말 10억원 CB를 주식으로 전환했는데 불허한 것이다. 두 건의 CB 전환 신청도 줄줄이 유예시켰다.

비슷한 소송이 작년 가을 쯤부터 잇따르고 있다. 코스닥 조선기자재업체 메디콕스는 지난해 10월 똑같은 소송을 당했다. 올해 1월에는 코스닥 화장품 제조업체 아우딘퓨쳐스 주주들도 CB 발행 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 소니드에 소송을 제기한 주주가 아우딘퓨쳐스에도 소송을 걸었다. 이 소송의 공통점은 소송 대리인이 법무법인 김앤전(대표 변호사 전병우)으로 같다는 점이다.

가처분 신청의 기본은 속전속결이다. 정식 판결을 받기 전에 어떤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집행보전제도여서 속도가 생명이다. 하지만 가처분 신청일에 거래소 민원을 통해 회사가 소송 공시를 하도록 한 뒤 가처분을 수개월 동안 질질 끈다. CB 처분금지 가처분 소송이 ‘알박기’ 목적이라고 보는 이유다.

지연 수법이 교묘하다. 우선 가장 바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한다. 충청북도 천안에 있는 소니드에 대한 가처분 신청도 마찬가지다. 서울중앙지법에서도 가장 바쁘기로 유명한 민사51부에 가처분 신청서를 접수한다. 소송 금액이 5억원 이상이어서 명백히 합의부(판사 3명) 사건인데도 단독부(판사 1명) 사건으로 신청한다. 단독부에서 다시 합의부로 보내는데만 절차상 20일 가량 소요된다. 이 사건을 담당하는 A변호사는 "메디콕스 가처분 신청은 넉달 전에 들어왔는데도 진척이 없다"며 "통상 가처분 사건은 20일 안팎이면 결론이 나야하는데 교묘하게 법의 허점을 악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체될 수록 상장기업은 자금조달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채권자는 직접적인 피해를 본다. 기획 소송에 회사가 휘청이게 되면 소액주주 피해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이런 일이 가능한 건 거래소가 '알박기 세력'에 장단을 맞춰주고 있기 때문이다.

거래소는 상장규정 46조의 '신주발행 효력 등에 관한 소송이 제기된 경우 상장을 유예할 수 있다'는 권한을 기계적으로 행사하고 있다. 법원의 결정·판결로 신주 발행의 효력이 부인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예외적으로 상장을 허용하도록 할 수 있다는 시행세칙(41조)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코스닥시장본부 공시부는 꼬리를 무는 이번 가처분 소송의 실체를 파악하고도 뒷짐만 지고 있다. 한 변호사는 "거래소가 사건의 본질을 알고도 계속 방관하면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며 "코스닥 'CB 공장' 기업사냥꾼과 하이에나 세력의 복마전에 소액주주 피해만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알박기 세력은 시간을 끌면서 약점 많은 코스닥 기업이나 대주주로부터 모종의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한다는게 시장 관계자들 얘기다. 금융감독원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법무법인 김앤전 측은 과거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회사를 집중적으로 노렸던 전력이 있다. 이번에는 사모 CB 발행이 도마 위에 오르자 자금 조달 이슈가 있는 코스닥 기업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코스닥 상폐 기업의 소액주주를 규합한 뒤 기존 경영진의 비리를 약점으로 잡고 합의금이나 법무법인 일감 몰아주는 방식으로 이득을 보고 있다는 의혹이 짙다"며 "일종의 시장 교란세력으로 볼 수 있는만큼 금감원이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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