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그런 시절이었지만 법학도 출신인 그에게 ‘자유 없는 평등’의 추구가 가져올 국가적 재앙이 너무도 뻔했을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북한과 옛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의 참담한 몰락이 그 사실을 웅변한다.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만큼 가져간다”는 슬로건이 그럴싸했지만, 누구도 열심히 일할 이유를 찾지 못하게 했다. 저서 <역사의 교훈>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 문명사학자 윌 듀런트는 이 문제를 보다 직설적으로 요약했다. “자유와 평등은 불구대천의 영원한(sworn and everlasting) 원수다. 평등이 활개 치면 자유는 죽어버린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미국이 번영을 지속해온 것은 (공화·민주 어느 정권에서건) 항상 자유를 우선으로 한 덕분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국회의장은 ‘친정’ 민주당 의원들의 ‘평등 우선’ 입법 공세를 막아내지 못했다. 젊은 시절 민주화운동에 투신했고, 당대표도 지낸 당내 최고참 정치인이었던 그가 ‘생각 따로, 행동 따로’였던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자유가 먼저라니! 평등에 반대한다는 거냐?” 거두절미하고 벌떼처럼 달려드는 이런 공세를 한두 마디로 반박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은 단순하지 않다. 수많은 요소와 변수가 얽히고설켜 다양한 결과물을 빚어내는 복잡계다. ‘의도’와 ‘결과’가 엇박자 내기 일쑤인 복잡계를 헤쳐 나갈 첫 번째 열쇠가 개인의 자유다. 자유 없이는 각자가 최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없고, 제대로 나눠 가질 성과를 낼 수도 없다. 18세기 영국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가 “평준화하려는 자는 결코 평등화하지 못한다”고 일깨운 이유일 것이다.
그가 ‘보수주의 창시자’로 불린 것은 당시 맹위를 떨쳤던 마르크스 평등주의에 맞서 자유주의 가치를 지켜냈기 때문이다. 버크는 “진실과 인기 사이에서 양자택일한다면 진실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듣기에 그럴듯하지만 모두를 수렁에 빠뜨리는 ‘평등 우선’ 선동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진실’을 알리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는 토로였다.
6년 만에 거리 집회에 나선 민주당의 요즘 모습은 한국 정치가 이런 ‘진실의 순간’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상황임을 절감케 한다. ‘난방비 폭탄’ 등 치솟는 생활물가를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로 곧장 연결시키고는 “보수정권이 자유만능주의를 앞세워 민생을 파탄시키고 있다”는 단골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제대로 된 이념·가치 논쟁의 필요성을 더욱 키운다.
답답한 것은 집권 보수여당의 대응이다. 다음달 당대표 선거를 앞두고 당 전체가 온통 “누가 대통령과 더 가깝고, 진짜 대리인이냐”는 ‘진윤’ 논란에 빠져 그런 기회를 날려 보내고 있다. ‘평등주의’를 전가의 보도로 삼는 야당의 파상적인 정치 공세에 ‘자유’의 가치로 제대로 한판 붙는 무대가 돼야 할 당 행사가 이전투구 정쟁으로 소모되고 있다. ‘자유’는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35차례나 언급하며 제시한 ‘국정 키워드’ 아닌가.
영국 보수당 대표를 지낸 마이클 하워드는 야당 시절이던 2004년 ‘자유’의 중요성을 설파한 보수주의 강령을 발표해 반대 진영으로부터도 찬사를 받았다. “누군가 부자이기 때문에 또 다른 사람이 가난해졌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누군가 지식이 있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무식해졌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로 시작되는 16개 신조는 “국민이 인간 본연의 야망을 추구하지 못하게 막는 장애를 제거하는 게 정치인의 의무”라는 다짐으로 ‘남 탓’을 하지 않는 성숙한 자유사회 실현의 비전을 제시했다. 한국의 보수여당은 어떤 성찰을 내놓을 건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