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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같다.” 사물이나 풍광을 세밀하게 그린 그림에는 이런 칭찬이 따라붙는다. 사진은 그 반대다. “그림 같다”는 게 최고의 칭찬이다.
노상호 작가(37)는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사진과 그림을 뒤섞은 작품을 제작했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여러 합성 이미지를 만든 뒤 이를 캔버스에 물감으로 옮긴 것. 이렇게 그린 ‘홀리’ 연작에는 머리가 두 개 있는 말, 토끼 귀가 달린 개 등 기괴한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노 작가는 “사진과 그림, 디지털 이미지와 아날로그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현실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서울 원서동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낭만적 아이러니’는 노 작가처럼 실험적인 작품세계를 펼치는 국내 현대미술 작가 5명을 소개하는 전시다. 전시명부터 어렵다. 미학 교과서에 나오는 용어로, ‘디지털과 아날로그 등 서로 상반된 개념을 대비해 아름다움을 이끌어낸다’는 뜻이다. 전시작도 대체로 난해하다. 그런데도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상업 갤러리지만 미술관처럼 실험적인 전시를 열어온 아라리오가 내놓는 무대를 기다려온 미술 애호가가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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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가 들어선 곳은 지하 1층~지상 6층짜리 건물이다. 5~6층에선 창덕궁과 원서공원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하지만 사무실로 쓰던 공간이어서 미술 작품을 전시하려면 손을 봐야 했다.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나가사카 조에게 리모델링을 맡겼다. 갤러리 관계자는 “기존의 고풍스러운 외관을 유지하면서 뮤지엄 건물과 조화를 이루는 게 목표였다”고 했다.
그래서 나가사카는 건물의 외관을 튀지 않는 검은 빛으로 꾸몄고, 갤러리 입구인 지하 1층은 공간사옥과 어울리게 회벽돌로 마무리했다. 반면 내부는 갤러리의 전형인 흰색 사각 형태로 만들어 대비를 줬다. 기존 1층과 2층을 터 층고도 높였다. 전시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벽에 걸 수 있는 작품 수를 줄이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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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의 이동욱 작가(47)는 피부를 연상시키는 분홍색 인공물질과 건축 재료인 허니콤을 이용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벌거벗은 작은 인물들이 쇠로 된 거친 구조물에 갇혀 있는 모습은 인간의 연약함을 상징한다. 3층의 노상호 작가를 지나 두 층을 올라가면 프린트한 사진을 붙여 조각처럼 만드는 권오상 작가의 ‘사진조각’ 신작들을 만날 수 있다. 만화 ‘원피스’ 문신을 한 일본 야쿠자, 가수 ‘잔나비’의 최정훈 얼굴을 한 작품 등이 인상적이다.
창밖의 창덕궁 풍경도 예술 작품만큼 아름답다. 갤러리 관계자는 “5층은 이번 전시에서만 일반 관객에게 개방하고, 이후엔 VIP 공간으로 쓸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3월 18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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