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 물더라도 발빼는 게 이득"…시공사의 타절 손익계산서

입력 2023-02-13 10:11  

이 기사는 02월 13일 10:11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대우건설을 필두로 대형 건설사에서 공사를 포기하고 타절(계약 해제)하는 사례가 나오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본 PF(프로젝트파이낸싱)에 들어가기 전 브릿지론 단계에서 사업이 철수되는 사례는 많아왔지만 대형 건설사가 보증까지 제공한 도급 사업을 중단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업성 우려를 겪는 지방 사업장 중심으로 타절 움직임이 본격화할지 주목된다.
본 PF 추진 비상등 켜진 대주단·시행사
2월 초 대우건설이 울산 동구 일산동 주상복합사업(푸르지오)의 시공권을 포기하는 일이 있었다. 당초 지난해 12월 공사 착공 후 2026년 5월 완공이 예정돼 있었지만 후순위 대출보증을 선 대우건설이 자체 중단을 선언했다. 대우건설은 후순위 브릿지론 보증금을 자체 자금으로 상환, 지난해 440억원을 전액 손실 처리했다.

앞서 시행사(팜헤이븐플래닝)는 부지 매입과 인허가 비용을 위해 브릿지론으로 1000억원을 조달했다. 선순위 460억원, 후순위 440억원, 에쿼티 100억원으로 구조를 짰다. 선순위 대주단엔 유안타증권(200억원), 우리금융캐피탈(100억원), 아이파트너스자산운용(80억원) 등이 참여했다. 대우건설은 앞서 선순위 대출에 대한 보증없이 후순위에 보증을 섰고 향후 본PF로 넘어갈 때 책임준공 의무를 지기로 했다.

대우건설이 후순위 브릿지론을 대위 변제하면서 사업 실행을 위한 본 PF 추진에 비상등이 켜졌다. 사업 초기 조달된 브릿지론은 본PF가 이뤄질 시 대출금으로 전환되고 이후 계약금· 중도금·잔금이 들어오면 본PF 대출금을 갚는 용도로 쓰이게 된다.

시행사와 선순위 대주단들은 추가 분담금을 투입해 브릿지론 만기를 3개월 연장하기로 했다. 일단 대출을 회수하려면 사업을 이어나가야 하니 이 기간 동안 시공을 맡아줄 대체 건설사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대형 건설사도 발을 뺀 마당에 대체 시공사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체 시공사 선정에 실패하면 브릿지론 상환을 위한 본 PF가 이뤄지지 않게 돼 대주단들은 부실을 떠안게 된다. 최악의 경우 청산 가능성이 있다. 토지 공매를 통한 회수 가능성이 큰 가운데 토지가 선순위 금액에 미치지 못하면 막대한 손해가 불가피하다.
시공사는 왜 자체 디폴트를 냈나
시공사는 왜 자체 디폴트를 냈을까. 브릿지론은 본PF로 넘어가기 불확실한 단계인 만큼 고수익 고위험 대출로 분류된다. 본 PF에서 금융기관이 제시한 금리와 수수료가 지나치게 높거나 향후 분양 실적에 대한 기대 역시 낮다면 미리 발을 빼는 것이 추가 손실을 막기 위한 방편이라 판단했을 수 있다.

높아진 금리와 무리한 수수료 조건이 우선 발목을 잡았다. 해당 사업의 PF 금융조건은 도급계약 당시만 해도 금리 5.7%에 수수료 1% 수준이었지만 최근 대주단으로부터 금리 10%에 수수료 11%를 통보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대우건설의 울산 사업장 기본도급액은 1594억원이었다. 하지만 철근과 시멘트 등 원자재 가격 상승에 이어 인건비와 물류비 등 건설원가 전반에 걸쳐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어 도급액 인상이 불가피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즉 공사를 할수록 손해를 본다는 계산이 있었을 것이란 평가다.

부동산 PF의 현금 수입원은 오직 분양 대금이지만 미분양 물량 적체와 매수심리 위축으로 분양가를 올리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원주 중흥그룹 부회장이 지난달 말 대한주택건설협회장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발언에서도 대우건설 상황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정 부회장은 "문제는 자잿값과 인건비 등 비용 상승으로 분양가 역시 계속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앞으로는 지금 분양가론 건설사가 집을 지을 수 없을 것"이라 말했다.

지방 사업장의 경우 특히 분양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대우건설이 시공권을 포기한 사업지는 울산 지역이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작년 울산 신규분양 물량(8236가구)은 전년(4731가구)에 비해 76% 늘었지만 미분양 물량은 397가구에서 1402가구로 253% 적체됐다. 입주예정 물량(8786가구)도 전년(3856가구)보다 127% 늘었다. 분양 전망 역시 밝지 못하다. 9일 주택산업연구원이 주택사업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전국 아파트분양전망지수는 전국적으로 모두 상승했지만 울산만이 유일하게 지수가 하락한 지역으로 조사됐다.

부동산 자문업계 관계자는 "대체로 시행사가 좋은 수익률을 주겠다며 서류를 흔들면서 투자자를 모집하지만 막상 뛰어들고 보면 사업지가 예상한 만큼 우량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일단 욕심이 나 시공권은 따냈는데 막상 보증서고 분석해보니 예상한 만큼의 순임대수익(NOI)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을 것"이라 분석했다.
"도급계약만으론 책임준공 의무없다?"…PF 업계에 경종
대우건설은 지난해 매출(10조4192억원)이 20% 증가하면서 창사 이래 최고의 영업이익(7600억원)을 달성했다. 국내 시공능력평가 6위의 대형 건설사 대우건설이 브릿지론 디폴트를 선언하고 책임준공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나서면서 PF 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책임준공은 사업시행 인가가 난 후 본 PF를 일으킬 때 시공사가 제공하는 보증방식이다. 책임준공하지 못해 건물을 준공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면 신탁사가 대주단의 채무를 상환하거나 시공을 교체해 책임준공을 완료하겠다고 약속하는 식이다. 과거엔 도급계약을 맺은 건설사가 책임준공을 제공하는 게 당연시됐지만 이젠 도급계약만으로는 책임준공 약정 체결로 이어지기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평가다.

대우건설 측은 "책임준공 의무 이행은 법적인 강제사항이 아니며 연대보증인으로서 보증 의무를 다하고 사업 참여자에서 빠진 것"이라 밝혔다. 협의없는 타절은 공사계약 이행거절에 해당하지만 시공사의 이행거절 의사가 확정적이라면 상대방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입장도 전했다. 실제로 책임준공 확약은 본 PF에선 문제가 되더라도 예비단계인 브릿지론에선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형 건설사가 이례적으로 브릿지론 단계에서 도급 사업을 중단한 건 그만큼 부동산 경기가 쉽게 회복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PF업계 한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시공사의 경우엔 업계 평판을 크게 고려하지 않고 그때그때 자금 사정에 맞춰서 '나라도 살자'는 식으로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지만 대우건설 같은 시공사가 이렇게 빠진다는 건 놀라운 일"이라며 "어쩌면 PF업계의 위기가 아직 시작도 안한 전초전은 아닌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대우건설뿐만 아니라 주요 건설사 내에서도 타절을 검토하는 움직임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 대형 건설사 법무팀 관계자는 "공사를 하면 할수록 손해니 어쩔 수 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다"며 "현재 우량 건설사들 사이에서 타절을 검토하는 사안이 수두룩하게 올라온다"고 전했다.

대우건설 정도 되는 우량 건설사마저 수백억 손실을 감수하고 발을 뺐으니 규모가 작은 건설사나 시행사들로 리스크가 확산되는 건 시간문제란 관전이 나온다. 특히 미분양이 많은 지역과 초기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많은 지역에서 문제를 빚을 것이란 지적이다. 대우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한 다른 조합들도 불안에 떨고 있다.

시공권 해지 사례가 추가로 나올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업계에선 소송 리스크도 확산할 것이라 보고 있다. 특히 타절 금액과 손해배상금을 둔 싸움이 예상된다. 계약이행 보증금을 손해배상 예정액으로 약정했다면 그 금액만큼을 배상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별도 이행이익 상당의 손해배상을 지급해야 하는데 산정 기준을 두고 다툼이 벌어질 수 있는 탓이다. 별도 이행이익은 계약을 이행했더라면 얻었을 수 있는 이익이다.

공사기성금 및 설계용역비 미지급 문제도 거론된다. 한 관계자는 "현장에선 기성금을 실제 공사한 것보다 덜 준다. 전체의 10%를 공사했다고 하면 기성금은 10%가 아니라 7~8%만 지급하는게 관행이었다. 그러다 보니 분쟁이 났을 때 건설사가 공사한 만큼 다 지급하라면서 청구를 하는데 조합에서 이런 의사결정을 법에 문제 없이 제대로 처리했는지도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