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은 울산에 100만평 부지를 매입했다. 설탕(제일제당)·양복(제일모직) 사업에서 성과를 거둔 그는 이 땅에 비료 공장을 짓는다. 울산 비료 사업을 전개한 삼성 계열사가 삼성정밀화학이다. 이 회사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쟁쟁한 계열사에 가려 존재감이 갈수록 희미해졌다.
2016년 삼성은 전략적 가치가 떨어진 삼성정밀화학을 롯데그룹에 판다. 매각 직후 롯데정밀화학으로 이름을 바꿨고 꾸준히 사세를 불려왔다. 이 회사는 롯데그룹에 편입된 뒤 7년 후 '캐시카우'(현금창출원)로 도약했다. 작년 롯데그룹 계열사 중 가운데 많은 영업이익을 거둔 것으로 추산된다. 유동성 위기를 겪던 롯데건설에 3000억원을 지원하는 등 그룹의 현금창고 역할을 톡톡히 했다.
9일 롯데정밀화학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2조4638억원, 영업이익 4085억원을 올렸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38.4%, 67.1% 늘었다. 영업이익은 2년 연속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롯데정밀화학의 작년 영업이익은 롯데그룹 계열사(롯데지주 제외) 중 가장 컸다. 같은 기간 그룹 주력 계열사인 롯데쇼핑(3942억원)마저도 압도했다. 롯데케미칼은 작년에 영업손실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롯데정밀화학은 그룹에 편입된 지 7년 만에 1등 캐시카우로 도약했다.
이 회사는 삼성그룹 소속 당시 전자 계열사 등에 밀려 존재감이 미미했다. 이른바 '삼성 후자'로 통했다. 삼성은 2016년 2월 이 회사와 삼성BP화학(롯데이네오스화학), 삼성SDI 화학부문을 묶어 롯데그룹에 처분했다. 롯데그룹에 넘어온 뒤 페인트와 표백제 등 원료로 쓰는 암모니아, 염소 등의 사업에 주력하며 실적을 불렸다. 실적이 뛰면서 기업가치가 상승했고 재무구조도 좋아졌다.
롯데그룹 편입 전인 2016년 2월 26일 이 회사 시가총액은 9275억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 8일 시가총액은 1조5222억원으로 50%가량 불었다. 지난해 말 부채비율은 17.9%로 우수한 재무구조도 갖췄다. 현금성 자산만 5780억원에 달했다. 넉넉한 현금을 바탕으로 계열사 지원에도 나섰다. 지난 1월 프로젝트파이낸싱(PF) 조달이 여의찮은 롯데건설에 3000억원을 빌려주기도 했다.
그룹의 핵심 신사업인 그린수소 사업도 주도하고 있다. 롯데케미칼 등은 2030년까지 6조원을 투입해 120만t의 그린 수소 등을 암모니아 형태 전환해 국내로 들여올 방침이다. 동북아시아 1위 암모니아 유통업체인 롯데정밀화학은 이렇게 들여온 암모니아를 수소로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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