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2월 13일 07:52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그간 가격 폭락과 불투명한 투자 집행, 러그풀(프로젝트 개발자가 돌연 중단해 투자금을 가로채는 투자 회수 사기) 등으로 홍역을 치렀던 카카오 코인이 투자자 신뢰 회복을 위한 개선 마련에 나섰다. 코인 가치 하락의 원흉이 됐던 지급 유보액의 처리 방안이 주 골자가 될 전망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 산하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Klaytn) 운용사 크러스트 유니버스는 그간 논란이 돼왔던 리저브(Reserve·유통되지 않은 지급 유보액) 클레이(KYLA) 물량 처리 방안을 내놓는다. 크러스트는 오는 20일께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23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다.
카카오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을 바라보는 시선이 차가워지자 대책을 내놓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초 단행한 수수료 30배 인상과 러그풀 문제에 이어 클레이 가치 하락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유력 프로젝트들의 이탈이 두드러졌다. 클레이는 클레이튼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기축통화 역할을 하는 핵심 가상자산이다.
가장 크게 지적받는 점은 불투명한 투자 집행이었다. 크러스트는 생태계 확대를 위해 별도 클레이튼성장펀드(KGF)에서 나온 클레이를 신규 프로젝트들에 투자해왔다. 정확한 투자 목록을 공개하지 않은데다 다수 익명 프로젝트에 과도한 클레이를 공급해 코인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게다가 투자를 받은 프로젝트 중 상당수가 현재 운영이 종료됐다.
클레이튼의 기축 통화 클레이는 최고가 4800원을 기록했던 2021년보다 95% 떨어진 250원에 거래되고 있다. 적지 않은 프로젝트들이 클레이 수수료를 주 수입원으로 하고 있다. 토큰 가격 하락에 따라 프로젝트 유지가 어려워지며 동력을 잃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크러스트는 초반엔 이더리움처럼 기술 중심으로 방향을 잘 잡았지만 갈수록 기술보단 생태계와 사업 확장에만 집중을 해왔다. 이를 위해 토큰 사용을 남발하고 소위 '잡코인'까지 들여오면서 막상 중요한 프로젝트들은 떠나고 클레이 가치도 떨어졌다"고 말했다.
클레이튼 생태계가 흔들리면서 운영사 크러스트는 가격 방어를 위한 대책 고심에 나서있다. 지난 4분기엔 투자 및 클레이 예비자금을 활용한 자금조달 활동도 중단했다. 리저브 처리를 둔 대책안도 이 같은 일환에서 비롯됐다. 재단 물량은 그간 가상자산 가치 하락의 원인 중 하나로 지적돼 왔다. 재단 물량 발행으로 다수의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만들어졌는데 우후죽순 늘면서 단기 투기 상품도 그만큼 증가하며 투자자 피해로 이어졌단 지적이 많았다.
현재 크러스트가 보유한 리저브 물량은 53억개에 이른다. 클레이 시세 250원으로 계산하면 총 1조3250억원에 이르는 규모다. 총 공급량 105억개의 절반에 이르는데다 현재 유통되는 공급량 31억개보다도 많다 보니 이들 물량이 시장에 풀릴 경우 클레이 시세에 직격탄이 된다. 가격 변동 리스크를 우려한 투자자들은 리저브 용도로 발행된 물량을 소각할 것을 요구해왔다.
투자자들의 불만이 유독 클레이튼에 집중됐던 이유는 클레이튼의 지난해 평균 토큰 인플레이션율(가상자산 유통량이 상승하는 비율)이 20%로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는 비트코인(1.7%)이나 이더리움(1.0%)을 포함해 글로벌 시가총액 30위 코인 평균치(4.2%)를 능가하는 수치다. 토큰 인플레이션율이 높을수록 토큰의 가치는 희석돼 토큰 가격이 하락한다.
카카오 크러스트 관계자는 "리저브를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처리할 것인지 내부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막바지 조율 단계에 있다"며 "리저브 물량이 시장에 유통되면 오버행 리스크가 있을 수 있어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말 '제로 리저브'를 선언한 경쟁사 네이버 라인처럼 선뜻 '제로 리저브'를 선포하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리저브가 없으면 내부 자원만을 활용해 운영해야 하는 만큼 블록체인 프로젝트 확장을 추진할 만한 동력이 사라진다. 크립토 윈터를 지나 언젠가 팽창기가 올 거라 예상한다면 소각 결정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크립토업계에선 카카오가 투자를 통한 생태계 활성화와 소각 중 택일하기보다는 이들 클레이 운영권 전반을 재단으로 옮기는 식으로 지배구조에 변화를 꾀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비이익단체인 재단 소유로 넘기고 사용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식이다. 사실상 투자자 거래에 따른 생태계 사용 대가 즉 '정당한 노동의 대가' 외에는 보유물량을 통한 이익활동엔 나서지 않겠다는 의미가 된다. 더이상 투자 목적으로 보유하지 않겠다는 의미인 만큼 크립토업계에 미칠 파장이 상당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방향이란 기대 섞인 시선도 있다.
증권성 리스크를 선제에 해소하려는 의도라는 평가다. 금융위원회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4분기에 토큰(STO) 가이드라인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그간 법조계와 크립토업계에선 가상자산을 증권으로 볼 것인지를 제일 중요한 쟁점으로 인식해왔다. 금융당국이 나서 제도권 편입을 예고한 만큼 기존 사업자들에겐 규제 신호탄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익집단이 아닌 재단으로 운영권을 넘겨 증권성 리스크를 사전에 회피하려 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배경이다.
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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