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은 마크롱이 총대멨는데…연금개혁 끌고갈 '감독·주연'이 없다

입력 2023-02-09 18:21   수정 2023-02-16 19:35




“국민연금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개편은 정부 몫이라고 여야 간사가 명확히 말했다는 거죠?”

9일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기자들에게 여당인 국민의힘의 정확한 방침이 무엇인지 묻기도 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불과 한 달 전 연금개혁 과제를 발표하면서 “국민연금은 모수개혁을 중심으로 논의하겠다”고 강조했지만, 결국 허언이 되고 말았다.

복지부는 특위 일정에 맞춰 올 3월 발표하기로 예정돼 있던 국민연금 재정추계 결과를 두 달 앞당긴 지난달 내놨다. 결과적으로 복지부와 국회가 연금개혁에 대해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 이면에는 인기 없는 개혁과제를 주도하는 데서 오는 부담을 서로 떠안지 않으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연금개혁 소극적인 정치권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5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연금·노동·교육개혁을 더 미룰 수 없다”며 정부의 3대 개혁 과제 중에서도 연금개혁을 첫 순위로 제시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대통령실과 여당 핵심 인사들이 발빠른 연금개혁 착수를 부담스러워한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내년 4월 치러지는 총선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회 연금특위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로부터 ‘연금개혁은 내년 총선 이후 다수당이 되면 밀어붙일 테니 논의에 너무 속도를 내지 말아달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대통령실의 의지가 강하지 않으니 여당도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총선 전 연금개혁안을 내놓겠다며 의욕적으로 출발한 국회 연금특위가 지난 8일 개혁 작업을 사실상 정부에 떠넘긴 이유다. 특위 위원장을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맡고 있는데도, 여당은 초안조차 마련하는 데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연금개혁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여당과 나눌 이유가 없다는 분위기다. 특위 야당 간사인 김성주 의원은 지난달 민주당 연금개혁 토론회에서 “‘야당이 연금개혁을 얼마나 책임 있게 해야 하냐’는 당내 의문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통령실 메시지도 모호
언제, 어떻게 연금개혁을 이룰지에 대한 윤 대통령의 메시지 역시 명확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2027년 5월을 전후로 연금개혁의 완성판을 내겠다”고 말한 것과 관련해 정부 내에서는 혼란이 벌어졌다. 논란 끝에 올해 10월에는 국민연금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에 대한 정부안을 내고, 2027년 5월에는 기초연금, 퇴직연금 등을 모두 아우르는 연금 구조개혁안을 발표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하지만 이후 정치 일정과 윤석열 정부의 임기 등을 감안하면 이마저도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국회 특위 논의에 앞서 민간 자문위에서 보험료 인상폭 등의 수치를 제시하자 대통령실이 연금개혁에 부담을 느꼈다”며 “총선을 6개월 앞둔 올 10월에 정부가 관련 안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처럼 대통령·정부가 주도해야
윤 대통령이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의 연금개혁을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크롱 대통령은 야당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집권 5개월 만에 연금개혁안을 발표했다. 현재 62세인 정년을 2027년까지 63세, 2030년까지 64세로 늘리는 식으로 수령 시점을 늦추는 게 골자다.

여론조사 결과 이 연금개혁안에 프랑스 국민의 70% 이상이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그럼에도 밀어붙이겠다는 게 마크롱 정부의 의지다. 야당이 반대해도 포퓰리즘적으로는 해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 연금 전문가는 “개혁에 적극적이지 않은 국회에 논의를 맡긴 게 패착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이제라도 대통령과 정부가 연금개혁을 주도하면서 국회와 국민들을 설득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설지연/곽용희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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