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병역비리 스캔들로 뇌전증이 주목받고 있다. 병무청과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은 뇌전증 환자로 위장해 병역을 면제받거나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은 병역의무자와 브로커 등 70여 명을 수사 중이다. 뇌전증은 치매, 파킨슨병, 뇌졸중과 함께 대표적인 신경계 질환으로 꼽힌다. 하루평균 400명 이상이 진료받을 만큼 흔한 병이지만 뇌전증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여전하다. 오는 13일은 국제뇌전증협회와 국제뇌전증퇴치연맹이 정한 ‘세계 뇌전증의 날’이다. 의료계 자문을 얻어 뇌전증에 대해 알아봤다.
뇌전증은 뇌 신경세포가 일시적으로 과도한 흥분 상태를 나타내면서 뇌기능 마비를 일으키는 만성적인 신경질환이다. 신경세포에 과도한 전류가 흐르면서 불규칙하고 반복적인 발작이 나타난다. 발작이 최소 24시간 이상 간격을 두고 일생에 거쳐 2회 이상 생기면 뇌전증으로 본다.
과거엔 간질이나 전간증으로 불렸으나 인식 개선을 위해 2009년 대한뇌전증학회가 정식 명칭을 변경했다. 인구의 1~3%는 평생 한 번 이상의 발작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병률은 영유아기 때 가장 높고 이후 감소해 성인기엔 낮아졌다가 60세 이후 다시 급증하는 U자 곡선을 그린다.
발생 원인은 무수히 많다. 연령에 따라서도 다르다. 영유아기 때는 선천성 기형이나 주산기 뇌손상, 감염과 열성경련 등이 원인이 된다. 청장년기와 노년기엔 뇌졸중이나 뇌종양, 뇌 외상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상당수는 그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최윤호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뇌병원 신경과 교수는 “뇌전증은 전 연령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신경계 질환으로 불치병이나 정신병이 아니다”며 “정확한 진단을 통해 치료, 관리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진단을 위해선 발작 당시 환자의 증상에 대한 문진이 가장 중요하다. 의사가 목격자와 면담을 하기도 하는 이유다. 두피에 전극을 부착해 뇌세포의 전기 활동을 실시간 기록하는 뇌파검사와 뇌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시행한다. 환자 상태에 따라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이나 단일광자방출단층촬영(SPECT) 등도 병행한다. 박소영 순천향대 부천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소아 뇌전증의 경우 치료가 늦어지면 뇌 신경 발달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적기에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발작을 억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항경련제 복용이다. 황경진 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뇌전증 환자의 60~70%는 약물로 조절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며 “약물 개발 속도가 빨라지면서 20가지가 넘는 항뇌전증 약제가 있다”고 했다.
약물치료로도 발작이 잡히지 않는 난치성 뇌전증 환자는 주로 수술을 한다. 뇌종양 및 동정맥 기형 등 뇌전증 원인이 되는 병소가 뚜렷한 경우가 해당한다. 미주신경자극술(VNS)이나 뇌심부자극술(DBS), 탄수화물 섭취를 제한하는 케톤 생성 식이요법 등의 치료법도 있다.
알코올은 발작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 뇌전증 환자는 음주를 피하는 게 좋다. 감기에 걸렸을 땐 의사와 상의해야 한다. 감기약 성분 중 약물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성분이 포함됐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 운전은 하지 말아야 한다. 무리한 운동도 삼가는 게 좋다.
의학적 지식이 부족하던 과거에는 뇌전증 환자를 정신병자나 미친 사람, 귀신 들린 사람 등으로 낙인찍는 일이 흔했다. 지금까지도 뇌전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 이상암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뇌전증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많은 환자가 부당한 대우와 차별을 받고 있다”며 “적극적인 캠페인과 교육 등을 통해 뇌전증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바로잡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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