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올해 감산 강도를 높이거나 오래 이어가지 않겠다는 방침을 시사했다. 지난해 10월 ‘유례 없는 수준’의 감산을 선언하고 4개월 여 만의 전략 변화다. 강도 높은 감산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장 우려를 감안한 조치로 풀이된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15일 반도체 감산 계획에 대해 “엄청난 감산은 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날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림대 도원학술원 개원 기념 학술심포지엄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박 부회장은 “공급이 초과할 때는 ‘슬로우 다운’을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너무 감산하는 것도 경쟁력 차원에서는 좋은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어떻게 보면 수요 공급 비즈니스 모델이 좀 단순해서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며 “그 부분에 대해 다양하게 극복할 방안을 생각 중”이라고 덧붙였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말부터 수익성 낮은 제품을 중심으로 웨이퍼 투입량을 줄여왔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재고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해 생산을 줄인 것이다. SK하이닉스가 감산을 선언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이후 13년 만이다. 올해 설비 투자 계획도 지난해보다 50% 이상 줄였다.
다만 올해 반도체 시장 상황이 어두운 것만은 아니라고 박 부회장은 진단했다. 그는 이날 심포지엄에서 기조연설을 맡아 “대화형AI ‘챗GPT’의 확산으로 반도체 산업에 새로운 수요가 창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데이터 생산, 저장, 처리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챗GPT가 반도체 수요의 새로운 ‘킬러 앱’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업 주요 리스크로는 ‘인력 확보’를 꼽았다. 그는 “2031년 학사·석사·박사 기준 총 5만4000명 수준의 인력 부족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 전반에 인력 쟁탈전이 심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박 부회장은 “마이크론이 우수 인재를 키워놓으면 인텔이 데려가고, 마이크론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인력을 뽑아간다”고 말했다.
김기남 삼성전자 SAIT 회장도 이날 기조연설을 맡아 “기술 혁신을 추진할 핵심 연구 인력 확보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삼성이 반도체 계약학과를 만들어 봐도 잘 안 된다”며 “인력 육성은 기업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국가와 학계, 산업계가 협력해 풀어가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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