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미분양 아파트가 6만8000가구를 넘어선 가운데 금융권에선 ‘분양가를 34% 할인할 여력이 있어 빌려준 돈은 다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와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건설·시행 업계에선 30% 이상의 할인 분양은 ‘나머지는 다 죽고 증권사만 살겠다는 것이냐’는 반응이 나온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 16일 미분양 주택 등의 할인분양 여력이 높아 국내 증권사들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투자금 회수에 무리가 없을 것이란 결론을 담은 ‘증권사 부동산PF 투자자금 회수여력과 리스크 대응능력 점검’이란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국내 25개 증권사의 부동산 PF 대출과 약정 등 규모가 약 28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임시 토지담보대출인 브릿지론 규모는 8조2000억 원으로 전체 분석대상 규모의 29% 가량을 차지했고, 본PF를 일으켜 분양은 했으나 공정률이 20%이하인 사업장에 빌려준 돈이 11조4000억원으로 부실 우려가 심각하다고 분석했다. 분양형 본PF 사업장 중 공정률이 50% 이상인 사업장은 전체 대출과 약정 가운데 20%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미착공 및 공정률이 50% 미만인 사업장이 80%다.
증권사들이 참여한 분양형 부동산 PF 사업의 분양가 기준 총매출액(부동산 가치)은 216조원으로 집계됐다. 다만 후순위 대출을 포함한 모든 대출금이 상환될 수 있는 손익분기점 분양대금은 총매출액의 66%인 142조원으로 할일분양을 할 경우 원금을 찾을 수 있다고 봤다. 연구팀은 보고서에서 “향후 부동산 PF 대상 건축물의 완공이 가능하다고 가정할 경우 평균 34% 정도의 할인 분양 여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건설업계에선 할인율 34%란 숫자가 비현실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할인분양 얘기가 자꾸 나오고 금융권의 압박이 심해지면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늘어난 건설원가는 물론 시행가가 투입한 지분과 비용 등은 무시하고 PF 상환이 가능한 숫자만 얘기한 것”이라며 “34% 할인은 공매나 경매에 넘어갔을 때에나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기존 수분양자들과의 신뢰 문제로 큰 폭의 할인분양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9~10년 전 수도권의 신도시 단지에서 할인분양이 이뤄졌을 당시, 기존 수분양자들은 할인된 가격으로 분양받은 입주민의 이사를 막아서며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김승배 부동산개발협회장 “할인을 해서라도 사업을 마무리 하는 게 부도에 몰리는 것보다 낫기는 하다”면서도 “시장이 좋지 않을 때 가격을 할인한다고 무조건 분양이 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추가 마케팅 비용을 투입하거나 단지 내에서도 저층 등 좋지 않은 미분양을 이자를 깎아주는 등 분양 조건을 유리하게 해주는 등 묘수를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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