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피아노부터 하프까지…악기로 그려낸 클래식 이야기

입력 2023-02-21 15:22   수정 2023-02-21 15:35


우리에게 어떤 악기보다 친숙한 피아노는 과거 ‘고급 가구’로 활용됐다. 세바스티앵 에라르, 존 브로드우드 등 초기 피아노 제작자들이 가구 제작사의 아들이란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피아노가 일류 피아니스트들의 연주 문화를 통해 발전함과 동시에 중류층 가정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영향이다. 실제로 피아노가 발명된 곳은 이탈리아지만 정작 피아노 문화가 발달한 곳은 거실에서 가족 구성원이 모여 함께 즐기는 문화가 발달한 독일, 프랑스 등지였다. 이들은 피아노를 통해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고상한 취미를 즐길 줄 아는 중류층의 안락한 가정의 모습을 뽐내고자 했다. 이는 산업혁명 이후 돈을 버는 남성과 가사를 담당하는 여성의 활동 반경이 명확히 나뉘면서, 집 안에서 피아노를 치는 여성의 이미지가 일등 신붓감으로 여겨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흔히 클래식 음악을 떠올릴 때 세기를 뛰어넘는 명작이나 화려한 무대 위에서 빠른 손놀림을 구사하는 연주자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곤 한다. 더 나아간다 해도 유명 작곡가의 생애를 되뇌는 정도에 그친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이 소리의 예술이란 점에 주목한다면 그 중심에 '악기'가 자리하고 있단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림, 클래식 악기를 그리다>는 바이올린, 피아노, 팀파니, 류트, 플루트, 하프 등 여섯 가지 클래식 악기를 중심으로 유럽의 사회, 문화, 경제를 풀어낸 인문 교양서다. 음색, 구조, 음역, 조율, 연주 방법 등 물리적 측면은 부수적인 영역에 지나지 않는다. 음악학자인 저자는 악기 제작과 개량의 역사, 특정 사건에서의 악기의 역할, 악기를 통해 바라본 사회상 등에 집중한다. 당대 악기 모습이 담긴 50여점의 회화 작품으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덤이다. 그간 잘 다뤄지지 않았던 악기를 주축으로 풍부한 에피소드가 담겨있어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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