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공개된 KT의 차기 최고경영자(CEO) 지원자 명단을 보고 KT 블라인드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표현은 좀 거칠지만 여권과 관료, KT 출신들로 꽉 찬 명단에 대한 평가다. 각종 포털사이트에도 비슷한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나름 비장한 각오로 출사표를 던진 18명의 사외후보가 듣기에는 좀 서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공개모집에 응한 지원자 중에 귀가 번쩍 뜨이는 반가운 이름이 없는 건 사실이다. 지원자 전원의 명단부터 단계별 탈락자까지 공개하겠다고 할 때부터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KT 주변에는 온갖 설(說)도 난무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낙점한 ‘윤심’ 지원자가 누구냐에 모두의 관심이 쏠려 있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제일 의외의 인물이 될 것 같다”고 했다. “통신업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과감히 지원한 것은 뭔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 아니겠느냐”는 이유에서다. 다른 관계자는 “‘윤심’을 받은 지원자가 예상치 못하게 중도 탈락할 경우 마땅한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경선이 또다시 무효화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에이” 하고 웃어넘길 얘기지만 ‘진짜일 수 있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했거나 낙선한 인물 등 현 정부 주변의 정치인이 여럿 지원한 것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나름대로 지원 이유야 있었겠지만 이들이 당선되면 결국 정부가 ‘한 자리 챙겨주는’ 꼴이 될 수 있다.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개선한다며 훨씬 더 불투명한 지배구조 속으로 몰아넣는 격이다.
사내 후보가 다시 16명이나 추천된 것도 씁쓸한 부분이다. 사실 좋은 사내 후보가 있었다면 작년 10~12월 이사회가 사내 후보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살펴봤어야 했다. 이제 와서 구현모 대표보다 좋은 후보가 사실은 숨어 있었다고 이사회가 인정하기도 쉽지 않다.
KT 내부에는 이미 “벌써 몇 번이나 겪은 일”이라는 자조적인 분위기가 팽배하다. 그러나 지금은 2023년이다. 2008년, 2013년, 2020년 수장 교체 때 겪었던 나쁜 기억을 이번에도 다시 반복해선 안 된다. KT CEO는 ‘연임을 위해 누구에게 줄을 댈까’가 아니라 인공지능(AI), 디지털전환(DX) 등 새 먹거리를 고민하느라 바빠야 한다. 지금이라도 대통령실이 “KT나 포스코와 같은 기업의 CEO 선임에 전혀 관여하지 않겠다”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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