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 2.2억 '뒷돈' 뜯은 타워크레인 기사…"앞으론 공갈·협박죄 처벌"

입력 2023-02-21 18:23   수정 2023-03-03 19:28



수도권 한 건설현장에서 건설노동조합에 속한 타워크레인 기사 A씨는 건설 하도급사에 월례비 1000만원을 요구했다. 회사가 거부하자 A씨는 인양 속도를 늦추는 태업으로 공사를 지연시켰다. 손실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건설사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월례비를 지급했다.

지방 한 건설현장에서 안전보건 규칙을 감독하는 B팀장은 노조전임자라는 이유로 출근하지 않고 계약 때 도장만 한 번 찍은 채 월 600만원을 건설사에 요구했다. 이른바 노조전임비다. 지방 중견 건설사는 이 같은 노조전임비로 매월 수천만원을 지급해왔다.
1인당 최대 2.2억원 월례비 받아
정부가 21일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 대책을 내놓은 것은 더 이상 건설노조의 불법 행위를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주택 공급 차질뿐 아니라 이런 행태가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국토교통부의 건설현장 불법 행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타워크레인 기사 438명이 월례비를 한 번 이상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확인된 월례비만 234억원에 달했다. 상위 20% 지점에 해당하는 기사의 수령 월례비는 9470만원이었다. 가장 많이 받은 조모씨는 연간 2억1700만원의 월례비를 받았다. 급여 외에 월평균 1670만원을 챙긴 셈이다.

이번 실태조사에선 월례비뿐 아니라 다양한 채용 요구 협박과 공사현장 점거 사례들이 속속 드러났다. 경기지역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선 복수의 건설 관련 노조가 건설장비 사용을 요구하면서 현장 출입문을 봉쇄해 15일간 공사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단체교섭이 길어지자 일부 조합원은 작업 속도를 떨어뜨리는 태업으로 실력 행사에 나섰다. 외국인 불법 채용을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소속 조합원 채용을 강요한 사례도 적발됐다.
처벌 수위 높이고 안전 규정도 합리화
정부는 이런 불법 행위에 대한 신속한 제재와 처벌이 가능하도록 현행 규정을 우선 적용한 뒤 입법 등 보완 조치에 나설 계획이다. 노조전임비나 월례비를 받는 경우 형법상 강요·협박·공갈죄를 적용해 즉시 처벌하기로 했다. 또 기계장비로 공사현장을 점거하면 형법상 업무방해죄를 적용하기로 했다. 위법한 쟁의행위는 노동조합법을 적용해 즉시 처벌한다.

정부는 월례비·노조전임비 미지급 때 노조가 기업을 압박하기 위해 일삼는 준법투쟁에 대해서도 안전 관련 지침을 합리적으로 조정해 악용의 빌미를 없애기로 했다.

예컨대 ‘작업 중인 타워크레인 아래에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규정 등을 악용해 작업현장에 작업자가 있으면 아예 작업을 거부하는 행위 등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노조가 건설사의 외국인 불법 채용을 빌미로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을 방지하고 현장 인력 공급을 돕기 위해 외국인 불법 채용 적발 시 사업주에게 적용되는 고용 제한 기간(1~3년)을 완화한다. 적용 범위도 사업주 단위에서 사업장 단위로 조정할 방침이다. 외국인 불법 채용 자체는 위법이지만 외국인 인력이 없으면 현장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현실을 감안한 조치다.

건설현장의 불법·부당 행위 처벌 규정은 강화된다. 불법 행위를 한 단체나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고 사업자등록을 취소하거나 개인 면허를 정지할 방침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국가기술자격법상 성실·품위유지 의무 규정을 적용해 이를 위반하고 부당금품을 수수하는 등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면 건설기계 기사의 면허를 정지하는 방안을 시행할 수 있다”며 “월례비 강요 등 부당금품을 받은 경우 해당 기사에게 최대 1년의 면허정지 처분을 내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건설업계는 이날 정부의 대책에 기대감을 보였다. 한 대형사 관계자는 “안전 규정이 본래 취지대로 합리적으로 운영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월례비 등 고질적인 악습이 줄어들면 건설현장의 효율성이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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