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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고민이 그리 많은지 물었다. 명성과 위상에 걸맞게 ‘한국 뮤지컬산업이 나아가야 할 길’ 같은 거대 담론을 쏟아낼 줄 알았다. 하지만 윤 감독의 입에서 나온 건 뮤지컬업계가 매일 맞닥뜨리는 ‘현실’이었다. “배우들이 하루아침에 춤과 노래를 익힐 수 없잖아요. 최소 두 달은 연습해야 하는데 장소가 없어요. 오죽하면 대학입시용 체육관을 빌리겠습니까.”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한국에서 첫째가는 기획사가 체육관에서 연습한다니. 윤 감독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동안 다들 서울시 산하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남산창작센터를 빌려 썼습니다. 넓고 깨끗한데 임차료도 싸니 선물 같은 공간이었죠. 코로나19 이전 얘기지만요.”
윤 감독의 ‘연습장 찾아 삼만리’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작년 말 ‘영웅’을 서울 마곡동 LG아트센터에 올리기 전에 연습하던 장소가 경기 하남에 있는 체육관이었다. 음향도 별로고, 접근성도 떨어지고, 임차료도 남산센터보다 몇 배 비싸지만 윤 감독은 안도했단다. ‘이런 체육관이라도 없었다면 큰 소리로 노래해야 하는 뮤지컬 특성상 산에 들어가야 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에서다.
윤 감독은 “연말에 새 작품을 올리는데, 그때 마땅한 연습장을 못 잡으면 또 체육관 신세를 져야 한다”고 했다.
성공하면 K팝이나 K무비 못지않게 대한민국에 큰 선물을 안겨줄 수 있는 게 뮤지컬이다. 37년 전 영국에서 태어난 ‘오페라의 유령’이 180여 개국에서 관객 1억5000만 명을 끌어모으며 수천억원의 수익을 조국에 안겨준 것처럼.
게다가 뮤지컬은 한국이 잘할 가능성이 높은 분야다. 팝과 영화, 드라마를 통해 보여준 세계 최고 수준의 스토리텔링 실력과 작곡 능력, 퍼포먼스 기량이 한데 담긴 장르여서다.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이 K콘텐츠의 다음 주자로 뮤지컬을 꼽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막 ‘싹수’가 보이기 시작한 K뮤지컬을 자그마한 기획사들에 “알아서 하라”고 방치하는 건 온당치 않다. 성공의 싹을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활짝 틔우려면 누군가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이게 바로 문화체육관광부의 존재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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