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23일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 직후 연 3.5%인 기준금리를 동결한 이유를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시장에서 금리 동결을 예상하긴 했지만 사실 동결 결정은 이 총재가 그동안 제시해온 포워드 가이던스(선제적 지침)를 고려하면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이 총재가 “5%대 물가상승률, 4%대 기대인플레이션율이면 물가에 우선을 두고 통화정책을 펴겠다”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당장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2%로 3개월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고, 2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다시 4%대(4.0%)에 진입했다.
그런데도 이 총재는 금리 동결 배경에 대해 “물가 경로를 점검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선 한은이 ‘경기 둔화’ 때문에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고 봤지만, 이 총재는 경기 둔화 우려에 대해선 애써 언급을 자제했다. 자칫 이번 동결이 ‘긴축 종료’ 메시지로 읽히는 걸 경계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경기 상황은 녹록지 않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수출은 5개월 연속 감소했다.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는 1, 2월 연속 40% 넘게 급감했다. 무역수지는 12개월째 적자다.
지난해 성장을 떠받친 소비도 올해는 부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7%에서 1.6%로 낮추면서도 하반기 대외 여건이 개선될 것으로 봤지만 일각에선 상반기보다 하반기가 더 어려운 ‘상저하저’를 점친다.
게다가 미국 경제는 미 중앙은행(Fed)의 긴축에도 여전히 견고하다. 미국에선 Fed의 긴축이 더 강하게, 장기간 이어질 것이란 관측까지 나온다. 한은으로선 Fed를 좇아 금리를 따라 올리면 경기 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100%가 넘는 가계부채를 두고 Fed를 따라가는 것도 자해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Fed가 금리를 올리는데 가만히 있으면 한·미 금리차 확대로 원화 약세(원·달러 환율 급등)가 재연될 수 있다. 이미 환율은 2월 한 달간 100원가량 오르며 1320원대로 올라섰다.
이 총재는 취임 후 지금까지 비교적 안정적으로 통화정책의 운전대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은 물가와 경기, 환율이 복잡하게 얽혀 무엇 하나 손쉽게 풀기 어려운 상황이 돼가고 있다. 지금부터가 이 총재에겐 진정한 시험대다. 이럴 때일수록 정교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건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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