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램 등 메모리반도체 산업은 지금까지 미국 정부의 관심권 밖에 있었다. 팹리스(반도체 설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와 비교해 ‘투자 대비 효율’이 낮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 30년간 한국이 메모리산업 주도권을 가져가든 말든 미국 정부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앞으론 달라질 전망이다. 미국 상무부는 최근 반도체지원법 가이드라인을 통해 핵심 목표로 ‘고용량 메모리반도체의 리더십 확보’를 꼽았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메모리반도체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분석된다.
1일 산업계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28일(현지시간) 공개한 반도체지원법 가이드라인 ‘성공을 위한 비전’ 항목을 통해 “2030년까지 미국의 반도체공장은 고용량 최첨단 D램을 ‘경쟁력 있는 수준’으로 생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 “미국에서 슈퍼컴퓨터를 위한 차세대메모리 개발이 이뤄질 것”이라며 “미국에서 생산된 메모리반도체는 고급 컴퓨팅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이 쥐고 있는 메모리반도체 패권을 미국으로 가져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외에 있는 메모리반도체 공장을 미국으로 유치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미 상무부는 “우리는 메모리반도체 회사들이 미국에 첨단 공장을 짓는 것을 환영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AI 시대가 오면서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예컨대 챗GPT 같은 생성형 AI 개발 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개발한 고용량 ‘HBM3’ D램은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와 함께 대용량 데이터 학습·연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미국 상무부도 현재 메모리반도체의 위상에 대해 “슈퍼컴퓨터 등 모든 컴퓨팅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이고 스마트폰 등에서도 상당 부분 큰 역할을 한다”고 진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서 생산되는 메모리반도체 비중이 ‘0%’에 가까울 정도로 낮아지자 ‘반전의 계기를 만들겠다’는 의사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이 자국 기업인 마이크론에 거액의 보조금을 지급해 경쟁력 강화를 지원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마이크론은 최근 뉴욕주 북부 클레이에 1000억달러(약 132조원)를 투자해 대규모 메모리반도체 생산시설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정부 지원을 염두에 둔 ‘통 큰 베팅’이란 평가가 나온다. 국내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자국 메모리반도체 기업 육성이 본격화하면 한국 기업이 어려운 싸움을 해야 할 수도 있다”며 “반도체 생산지 전략을 정교하게 가다듬을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황정수/정지은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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