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이 아닌 디지털자산은 증권 규제가 적용되지 않고, 디지털자산기본법에 따라 규율 체계가 마련된다.”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2일 발표한 ‘토큰증권 가이드라인’의 일부 내용이다. 그런데 2주 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를 증권법상 사기 혐의로 기소하면서 암호화폐 증권성 논란에 불을 붙였다. 금융위가 언급한 ‘증권’에 루나와 같은 암호화폐가 포함되면서 규제가 대폭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증권 중개 라이선스가 없는 거래소는 증권으로 분류된 암호화폐를 상장 폐지해야 하고, 해당 암호화폐의 시세도 추락할 수밖에 없다.
증권은 미국의 증권법과 같은 자본시장법으로 규제된다. 종류는 채무증권(채권)과 지분증권(주식), 수익증권(신탁), 파생결합증권(ELS·DLS 등), 증권예탁증권(해외 상장 주식), 투자계약증권 등이 있다. 사실상 미국 증권법상 증권 개념을 따온 것이다. 이 중 투자계약증권은 암호화폐가 등장하기 전까지 사문화된 증권 개념으로 분류돼 왔다. 법조계는 금융당국과 검찰이 일부 암호화폐를 투자계약증권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투자계약증권은 요약하면 다른 누군가가 주도하는 사업에 수익을 기대하면서 금전을 제공하면서 맺은 계약이다. 구체적으로 △투자자가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금전 등의 투자가 있을 것 △사업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타인의 사업에 투자할 것 △일정 조건이 충족되면 사업 결과에 따라 이익을 얻는 권리가 발생할 것 등을 요건으로 정해놨다.
다른 누군가의 사업에 투자하다 보면 투자자로서는 ‘정보 비대칭성’에 놓일 리스크를 안게 된다. 사업자가 사업의 성과나 계획을 부풀려 투자자들이 잘못된 판단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수호 법무법인 르네상스 대표변호사는 “루나의 경우 이례적 상황이 발생하면 언제든 급락할 수 있는데 백서에 어떤 상황이든 가격이 유지될 수 있다는 단정적인 서술만 있다”며 “확정적 수익률을 약속한 데다 알려지지 않은 물량까지 있었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세종은 증권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은 암호화폐로 투자자 모집 시 사업 성과에 따른 수익 배분을 적극적으로 제시한 경우를 꼽았다. 또 암호화폐 발행인의 노력이나 경험, 능력 등을 제시하면서 투자자 돈을 모아 사업을 수행하고 그 수익을 나눠주는 경우도 증권성이 높다고 봤다.
반면 증권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낮은 암호화폐는 발행인이 없는 경우다. 암호화폐로 모은 금전으로 사업을 수행해도 수익에 대한 투자자의 권리가 없는 경우나 투자자가 사업에 일상적으로 참여해 정보 비대칭성이 없는 경우도 증권성이 낮다고 분석했다.
이는 여전히 ‘가이드라인’에 불과할 뿐, 개별 암호화폐에 대한 증권성 판단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SEC는 작년 7월 미국 거래소 코인베이스의 전 직원을 증권법상 내부자거래 혐의로 기소하면서 코인베이스에 상장된 9개 암호화폐를 증권으로 분류했다. 이번에 권 대표를 기소하면서는 루나와 테라뿐 아니라 미러프로토콜(MIR)과 래핑된 루나(wLUNA), 미러에셋(mASSETS) 등도 증권으로 봤다. 암호화폐를 하나씩 들여다보면서 증권성을 판단하고 있다는 얘기다. 황현일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암호화폐의 성격도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발행 당시에는 증권성이 없어도 나중에 인정될 여지가 있어 주기적 재평가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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