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중국 대책 벅찬데…마이크론·인텔 공세 대응도 '발등의 불'

입력 2023-03-02 17:52   수정 2023-03-10 19:01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중국 생산 비중을 줄이고 국내·미국 등에 추가 투자하는 방향으로 중장기 ‘생산 전략’을 다시 짜고 있다. 미국이 최근 공개한 반도체지원법(CHIPS Act)의 ‘가드레일(안전장치, 10년간 위험국에 투자·증설 금지)’ 조항으로 중국 공장의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워졌고, 미국 정부가 자국에 메모리반도체 라인 등을 추가로 투자할 것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脫)중국’ 요구에 타지역 투자 확대

2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최근 생산 전략을 재검토하고 있다. 생산 전략은 공장 배치, 부품·원자재 수급 등을 경쟁력 극대화 관점에서 결정하는 것을 뜻한다. 삼성전자는 작년 10월과 올해 2월 ‘중장기 라인 및 글로벌 단지 운영 전략’을 담당할 경력직을 추가로 뽑을 정도로 적극적이다.

관통하는 기류는 탈중국이다. 초강대국 미국이 반도체지원법 보조금 가이드라인을 통해 ‘국가안보’와 ‘위험국가 견제’를 전면에 내세운 만큼 중국 내 반도체 생산 비중 축소는 피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대안 중 하나로는 중국 생산 비중을 서서히 줄이는 동시에 국내 투자를 늘리는 방안이 거론된다.
美 정부 “판 깔아줄 테니 넘어와라”
미국 추가 투자에 대한 부담도 커지고 있다. 미 정부가 반도체지원법 가이드라인을 통해 메모리반도체, 최첨단 패키징 등과 관련, ‘제조 패권’에 대한 야심을 강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겉으론 글로벌 기업들에 ‘공장을 지었으면 좋겠다’는 형식의 ‘권유’ 형태지만 사실상 ‘압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기업에 ‘투자할 판을 깔아주겠다’는 뜻을 공표했다.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이야기한 게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28일 “최첨단 반도체 클러스터를 10년이 지나면 갖출 것”이라며 “보조금이 없더라도 인프라 등에서의 경쟁우위 때문에 반도체기업이 미국으로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텔, 마이크론 등 미 반도체 기업이 예상 밖의 공격적인 투자 계획을 공개하는 것도 국내 기업엔 부담이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시장 재진출을 선언한 인텔은 애리조나주에 300억달러, 오하이오주에 200억달러 등 총 500억달러(약 65조6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애리조나주 신축 공장은 파운드리 라인이다. TSMC, 삼성전자로부터 미국계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업) 같은 고객사를 빼앗아 오기 위한 목적이 강하다. 퀄컴 등은 “인텔의 고객사가 될 것”이라고 공식 선언했다.

세계 3위 D램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은 뉴욕주와 아이다호주에 총 1150억달러(약 150조9000억원)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마이크론이 연구개발(R&D)에 주력하고,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등 설비투자에 보수적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통 큰 결단’으로 평가된다.
경쟁사 대응 위해 추가 투자 필요
문제는 미국 반도체 기업들이 투자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에 ‘자사 우대’ 등을 요청하고 있다는 점이다. 패트릭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 등은 “외국기업이 아니라 미국 기업에 지원을 늘려야 한다”며 노골적으로 차별 지원을 요구했다.

반도체업계에선 미국 정부의 뜻도 자국 기업과 다르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궁극적인 목표는 ‘미국 기업이 주도하는 반도체 시장 질서’라는 뜻이다. 미국계 반도체기업 고위 관계자는 “미 정부는 마이크론을 앞세워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영향력을 낮추고 인텔을 통해 TSMC를 대체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이유로 미국 투자 확대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기업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미국의 눈 밖에 나지 않고 대응 전략을 모색할 시간을 벌어둬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외국 기업들의 입장도 비슷하다. 한 외국계 반도체기업 고위 관계자는 “미국이 강제하면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 모든 반도체 기업의 고민”이라며 “보조금 수령과 일정 수준의 물량을 확보하는 게 가능하다는 전제로 미국에 추가로 투자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황정수/정지은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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