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적십자사가 국가로부터 세대주 이름과 주소를 받아 집집마다 이름이 적힌 회비 지로통지서를 보낼 수 있게 한 대한적십자사조직법에는 문제가 없다는 헌법재판소의 첫 판단이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현행 적십자법 8조 등이 국민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취지의 위헌확인 소송을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기각?각하했다고 3일 밝혔다.
적십자사는 적십자법과 관련 시행령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회원 모집과 회비 모금, 기부금 영수증 발급에 필요한 자료를 요청할 수 있다. 행정안전부는 2019년 기준 총 1766만2388건의 자료를 적십자사에 제공했다. 전국 만 25~74세 세대주의 이름과 주소를 담은 자료다. 적십자사는 이 자료에 따라 집집마다 적십사회비 지로통지서를 보냈다.
적십자회비 지로통지서를 받은 A씨 등 세대주들은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국가나 지자체가 적십자사에 개인정보를 제공하도록 한 것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그러나 헌재는 “주소는 지로통지서 발송을 위해 필수적인 정보이며 성명은 사회생활 영역에서 노출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정보로서 그자체로 언제나 엄격한 보호 대상이 된다고 하기 어렵다”며 적십자법과 그 시행령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아울러 제네바협약에 가입한 한국으로선 적십자사 활동을 지원할 의무가 있고, 적십자사가 정부의 인도적 활동을 보조하거나 남북교류사업, 혈액사업 등 특수 사업을 수행해온 점 등을 고려할 때 적십자회비 모금을 위한 적십자법 8조의 입법 목적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한편 이선애?문형배 재판관은 반대의견을 내고 “성명이 주소와 함께 제공되면 ‘누가 어디에 살고 있는가’를 알 수 있게 돼 정보의 가치는 훨씬 커지고 개인정보가 악용?유출됐을 경우의 위험성도 함께 높아진다”며 “적십자사가 개인정보를 남용하거나 유출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전혀 마련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일반 세금고지서와 유사한 형태인 적십자회비 지로용지를 놓고 그동안 “세금인줄 알고 냈다”는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에 올해부터 적십자사는 과거 5년 동안 한 번 이상 납부한 사람에게만 지로용지를 발송하기로 했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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