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기업 '징용 배상'은 불발…기시다, 오부치 선언 계승 밝힐 듯

입력 2023-03-05 18:34   수정 2023-03-06 01:31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한·일 간 진행된 강제징용 피해배상 협상의 핵심 쟁점은 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피고기업의 참여 여부였다. 한국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 측 의견을 고려해 피고기업의 호응을 촉구했지만,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이 문제는 이미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정부가 6일 발표하는 해법은 이런 입장 차이를 감안한 고육지책이라는 분석이다. 피고기업의 배상 참여를 강요하지 않되 양국 경제단체가 조성하는 공동기금을 통해 기여할 수 있는 문을 열어놓은 것이다.
日 피고기업 참여 불가에 韓 ‘고육책’
정부는 지난 1월 국회 토론회에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한 ‘3자 변제’ 해법을 내놓은 뒤 일본 측에 성의 있는 호응을 요구했다. 실무자급에서는 피고기업의 배상과 사죄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전달했다. 하지만 일본 측은 강제동원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재단에 일본 기업이 기부할 수 없다고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투트랙’ 전략이 대안으로 거론됐다. 강제징용 배상과 별개로 한국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일본 게이단렌(경제단체연합회)이 양국 기업의 참여로 ‘미래청년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이다. 이 경우 피고기업이 회비나 기여금을 통해 간접적으로 기금에 참여할 수 있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은 5일 미국으로 출국하며 “미래 세대들이 양국 관계의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양측 경제계라든지 다양한 분야에서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양국은 한국 정부가 해법을 발표하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김대중-오부치 선언’ 등 과거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밝히는 안을 조율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민당 내부 반발에도 불구하고 기시다 총리가 직접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라는 내용이 담긴 선언을 재확인하는 것은 전향적인 조치라는 평가도 나온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양국이 원칙론으로 부딪혀 해결이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고육지책을 내놓은 것”이라며 “우리 기업이 배상금을 내고, 일본 측이 호응하는 조치를 하는 타협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피해자 “일본기업도 배상해야”
정부가 한·일 관계 정상화를 위해 해법을 제시했지만 피해자 측을 설득하고, 국민 공감대를 모으는 일은 과제로 남았다. 외교부는 해법 발표 이후 피해자와 유가족 등 원고들에게 제3자 변제에 따른 배상금 수령 의사를 묻는 절차를 밟는다는 방침이다.

피해자 측 소송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는 5일 ‘한국 기업 참여를 통한 3자 변제’ 해법에 대해 “강제동원 문제에는 1엔도 낼 수 없다는 일본의 완승”이라고 지적했다. 또 미래청년기금 조성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가 외교적 실패를 감추기 위해 본질과 상관없는 재단에 일본 게이단렌 참여로 분식(粉飾)을 하려는 게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야당의 반발도 예상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성명을 통해 “윤석열 정부가 일본 기업 참여 없는 ‘제3자 변제안’과 일본 정부의 간접 사과를 강제징용 해법으로 공식 발표한다면 이는 대한민국 외교사에 최악의 굴욕 외교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 기업들의 재원 출연이 순조롭게 이뤄질지도 변수다.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와 계류 원고들이 받아야 할 배상금은 총 140억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포스코 한국도로공사 KT&G 한국전력 KT 등 한·일 청구권협정 수혜 기업들이 기금을 우선 출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중 2012년 100억원 출연을 약속해 지금까지 60억원을 출연한 포스코는 나머지 40억원에 대한 요청이 들어오면 적극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KT&G 등은 “정부의 공식 요청을 받으면 출연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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