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3월 07일 18:34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얼라인파트너스가 카카오의 SM엔터테인먼트 공개매수를 지지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창업자 지분을 인수하면서 공개매수를 선언한 하이브에 날을 세웠던 반대 논리와는 다른 잣대를 적용했다.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를 내세운 이유로 카카오는 하이브와 달리 최대주주에 오르더라도 경영권을 온전히 행사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었다.
시장에선 SM엔터 지분 1%를 가진 얼라인을 이끄는 이창환 대표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일각에선 자가당착에 빠져 행동주의 펀드의 명분을 잃어가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카카오는 7일 SM엔터 지분 최대 35%를 주당 15만원에 사들이겠다고 발표했다. 지분 25%를 주당 12만원에 사겠다고 제안한 하이브 공개매수를 정면에서 저지한 지 일주일만이다.
카카오의 공개매수 조건은 가격과 범위 모두 하이브보다 낫다. 하지만 전체 지분 40%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은 같다. 무엇보다 하이브 공개매수 당시 이 대표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에는 한참 못 미친다. 이 대표는 당시 “공개매수 가격 12만원은 너무 낮다. 경영권 프리미엄 100%는 받아야 한다”며 “공개매수 대상도 주주 평등권 차원에서 100%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방송에선 “SM엔터 주가는 30만원을 갈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다수의 매체에 출연해 '하이브의 공개매수에 응해선 안 되는 이유'를 수 차례 역설했다.
하지만 같은 편 카카오의 공개매수에 대해선 다른 잣대를 적용했다. 얼라인은 이날 입장문에서 "카카오는 SM엔터 현 경영진과 임직원을 신뢰하며, 최대주주가 되더라도 에스엠의 자율적, 독립적 운영을 보장하겠다고 한다"며 "하이브와 똑같이 40% 인수지만 주주가치 관점에서 카카오는 플랫폼 사업이 주력 사업이어서 이해상충에 대한 우려는 낮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하이브는 40% 지분을 가지고 새로운 이사회를 구성하려는 반면, 카카오는 같은 40%라도 얼라인과 현 경영진 중심의 이사회를 인정해준다는 점이 다르기 때문에 용인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얼라인은 이어 "나중에라도 카카오가 SM엔터 이사회를 카카오 측 인사들로 채우고 카카오의 전략적 목적에 맞춰 SM엔터를 운영하기로 한다면 카카오와 에스엠 양사 주주간의 이해관계 상충을 피하기 위해 카카오는 SM엔터 지분 100%를 인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프리미엄 100%를 주장했던 공개매수 가격도 이번엔 다른 잣대를 적용했다. 얼라인은 "우리나라 주식시장 역사상 처음으로 일반주주들이 지배주주보다 더 높은 가격을 받고 매각하는 사례가 생기게 된 것으로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얼라인은 SM엔터 지배구조 개선을 이끌어낸 일등공신으로 행동주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평을 받고 있다. 현 경영진을 설득해 올해 1월 '대표 프로듀서' 이수만 창업자를 배신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러나 분쟁 과정에서 과도한 경영 개입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현재 SM엔터 경영권 분쟁과 31일 정기 주주총회 표대결 대응을 사실상 얼라인이 주도하고 있다는 게 회사 안팎에서의 증언이다. SM엔터 경영권을 놓고 하이브와 카카오가 공개매수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실질적인 경영권은 얼라인이 행사하겠다는 독자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날 입장문에서도 "얼라인은 에스엠 경영진이 SM 3.0 전략을 계획대로 실행할 수 있다면 3년내 의미있는 기업가치 제고가 가능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며 "이번 공개매수에는 참여하지 않고 앞으로도 우호적 주주로 남아 SM 3.0 전략 실행을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정기 주총에서 이창환 대표는 기타비상무이사 후보로 직접 올린다. 이사 후보 상당수도 얼라인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주주행동주의에 나서 지배구조 개선을 이끌어낸 뒤에도 3년 동안 SM엔터 경영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으로 비쳐지고 있다.
시장에선 얼라인의 행동주의 행보에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가 소수 지분으로 '알박기' 형태로 경영권을 장악하려는 모양새가 행동주의 명분을 후퇴시키기 때문이다. 과거 '기업사냥꾼'으로 불리던 일부 행동주의 펀드와 달리 지배구조 개선 차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조명됐는데 자칫 부정적인 인식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과 달리 한국 정기 주총에서의 주주 의결권이 작년 말 기준으로 제한된다는 점 등을 악용한 사례로 기록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글로벌 투자은행(IB) 관계자는 "분쟁이 장기화되면 SM엔터 본연의 경쟁력도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얼라인의 이창환 대표는 자칫 SM엔터 지배구조 개선으로 쌓은 대의를 한순간에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이브에 반대하고 카카오를 지지하는 얼라인은 작년에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는 점도 얼라인의 명분을 퇴색시키는 요인이다. 얼라인은 작년 주총에서 소액주주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자신이 추천한 감사 선임에 성공한 이후 카카오보단 하이브와 가까웠다. 신주를 포함한 카카오의 SM엔터 인수 시도를 정면에서 비판하기도 했다. 작년 봄 하이브에 SM엔터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제안한 뒤 수개월 동안 하이브와 연합 전선을 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작년 여름께 갈라선 후 카카오와 한배를 탄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은/조진형 기자 hazz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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