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논할 때 ‘밥 벌어 먹고 사는’ 문제는 외면받기 일쑤다. 가장 원초적이고 중요한 부분이지만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하다는 이유에서다. 수많은 민초가 매일같이 벌이는 경제활동은 외세의 침략이나 정권의 찬탈 같은 사건에 간단히 묻혀버린다. 박물관에서도 마찬가지다. 보통 사람들이 과거에 어떻게 생활을 꾸려왔는지 경제사적으로 통찰하는 전시를 접하기 어렵다. 그래서 불과 몇 십 년 전 일인데도 낯설게 다가온다. 서울 광화문 앞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열고 있는 ‘목돈의 꿈: 재테크로 본 한국 현대사’ 전시가 의미 있는 까닭이다.
전시는 ‘아사히 금고’로 시작한다. 일제강점기에 사용됐던 일본산 가정용 금고다. 당시에도 은행이 있긴 했다. 하지만 대부분 정책금융기관이거나 일본인을 위한 은행이었다. 지금처럼 일반 서민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가 없었다. 돈이나 귀중품을 땅에 묻어 보관하는 사람이 많았다. 돈깨나 있는 집에서 썼던 금고가 400㎏의 무게를 자랑하는 ‘아사히 금고’다. 함영훈 학예연구사는 “전시를 위해 금고를 가져와야 하는데 성인 남성 여럿이 달라붙어도 옮기기가 쉽지 않아 진땀을 뺐다”고 말했다. 지금이야 재테크 상품이 셀 수도 없이 다양하지만 예전에는 절약이 전부였다. 밥을 지을 때마다 한 숟가락씩 쌀을 덜어뒀던 1960년대 ‘절미통(節米桶)’에선 어려웠던 시절이 그대로 느껴진다.
전시회에서는 계와 관련된 자료도 등장한다. 1950년대에 작성된 곗돈 장부를 비롯해 누군가 계를 깨고 도망쳐서 서민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내용의 신문기사들이 벽에 붙어 있다. 1949년 발행된 건국 기념 예금증서(저축), 1969년 발행된 제1회 주택복권(복권), 1980년대까지 인기를 끌었던 교육보험 관련 자료(저축성 보험) 등 다양한 경제·금융 관련 사료도 준비됐다. 계나 교육보험 등을 생소하게 느낄 학생들을 위해 전시품마다 금융상품의 운용 원리 등이 쉽게 설명돼 있다.
1970년대 이후 자료 중에서는 서울 강남 반포주공아파트의 분양 당시 사연이 눈길을 끈다. 지금은 부촌으로 손꼽히지만 이 아파트는 한때 ‘내시촌’으로 불렸다. 분양 당시 산아제한정책의 일환으로 정관수술을 한 사람에게 청약우선권을 줬기 때문이다. 사뭇 비장한 정부 저축 장려 포스터도 볼 수 있다. “매미처럼 후회 말고 개미처럼 저축하자”라고 적혀 있는 포스터다. 한국거래소 개소와 관련된 자료에서는 주식 거래를 위해 최초로 상장된 12개 기업이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정리돼 있다.
귀중한 유물이나 특이한 자료는 없는 전시다. 일반인들의 생활상을 담아낸 전시에 고려청자나 명작 그림이 등장할 리가 만무하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근현대 경제사를 가르쳐주거나 부모 세대의 일상을 접해보고 싶은 직장인들이 들러보기 좋은 전시다. 경제 상황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지는 게임 등 체험 활동도 나름대로 충실히 준비됐다. 입장료가 무료인 것도 큰 장점이다. 남희숙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현재의 경제적 성과를 이루기까지 국민이 어떤 식으로 노력했는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6월 25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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