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하면서 국내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VC)들은 여파가 한국으로 이어질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스타트업 업계는 "아직까지 직접적인 영향권은 아니다"라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분위기다.
12일 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VC들은 펀드 포트폴리오 기업 중 미국 법인이 있는지, 있다면 거래 은행이 SVB와 연결돼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SVB 파산으로 미국 포트폴리오 회사가 직격탄을 맞을 것을 우려해서다. SVB에 자금을 예치한 미국 현지 스타트업들은 돈이 묶여 당장 다음주부터 직원들에게 급여조차 지급할 수 없는 위기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VC들은 국내 출자자(LP)의 돈을 받아 국내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당장 미국만큼 충격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국내 한 대형 VC 대표는 "국내 VC의 펀드 구조상 SVB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경우는 없다"며 "직접적 파급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미국에 기반을 둔 한국계 스타트업과 VC는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한킴 알토스벤처스 대표는 SNS를 통해 "미국 VC 펀드의 포트폴리오 중 60~80%가량이 SVB와 거래하고 있었다"며 "이번 사태로 자금이 묶인 포트폴리오 회사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썼다. 또 "스타트업들이 자금을 돌려받으려면 수 주에서 수 개월은 걸릴 것"이라고 했다.
'심리적 영향'도 문제로 지적된다. 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 기조 등 대외 악재로 '투자 빙하기'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사태가 VC의 투자 기조를 더욱 보수적으로 만들 것이라는 우려다. VC업계 관계자는 "팬데믹 이후 퍼스트베이스 같은 미국 법인 설립을 도와주는 플랫폼을 통해 국내 VC들도 미국 인터넷전문은행에 자금을 예치한 사례가 있다"며 "심리적인 여파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가뜩이나 VC들이 엄격하게 투자 기준을 따지는데 이번 사태로 스타트업이 숨쉴 구멍이 더 작아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스타트업들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특히 해외(미국) 사업을 진행하고 있거나 당장 자금 조달이 필요한 회사들이 이번 사태로 영향을 받을 것을 걱정하는 중이다. 또 당장 매출이 나오지 않고 연구개발(R&D) 비용이 많이 들어 투자 의존도가 높은 회사들도 어두운 분위기다. 국내 한 스타트업 대표는 "최근 플립(해외 이전)을 고민하는 스타트업이 많은데, 계획에 수정을 해야하는 게 아닌지 고민 중"이라고 귀띔했다.
'벤처 대출(Venture debt)'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도 곳곳에서 포착된다. SVB의 주요 사업모델인 벤처 대출은 자금이 필요한 스타트업에 저리에 돈을 빌려주고 지분인수권을 받는 형태다. 국내에서도 '실리콘밸리 선진 투자 기법'이라며 도입의 필요성을 외치는 목소리가 여러 차례 나오기도 했다. 스타트업 관계자는 "SVB처럼 벤처 대출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게 이제는 너무나 불안해 보인다"고 말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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