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개정 근로기준법)’이 한국의 권위적 직장 문화를 바로잡는 역할을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억울하게 신고를 당했다는 지적도 상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모호한 규정 때문에 허위·과장 신고가 많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전체 2만3541건의 신고 중 고용부 ‘개선 지도’는 2877건(12.2%), ‘검찰 송치’는 415건(1.7%)에 그쳤다. 검찰 송치 사건 중 ‘기소’ 건수는 165건(0.7%)에 불과하다. 정부에서 ‘문제가 있다’고 보는 신고는 14% 정도다. 반면 ‘취하’는 8927건(37.9%)에 달했고 ‘법 위반 없음’ 6438건(27.3%)을 포함한 ‘기타’가 1만1265건(47.8%)이었다.
일각에선 낮은 기소율 등을 두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단속하지 않은 탓”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선 ‘괴롭힘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사례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가 불분명하고 허위신고 제재가 없다 보니 규정을 악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노동조합 소속의 한 변호사는 공공기관 징계위원회 위원으로 직장 내 괴롭힘 조사를 맡았다가 신고자로부터 “발령 난 부서에 가기 싫어서 사이가 안 좋던 부서장을 신고했다”는 진술을 받았다. 그런데도 신고자는 기피 부서에 가지 않게 됐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괴롭힘 피해를 신고한 자’에게 ‘인사 불이익’을 줘선 안 된다는 규정 때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 기피 부서 발령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된 것이다.
서울과 광주에 지사를 둔 모 기업에선 서울지사 직원들이 돌아가며 광주로 발령이 난다. 하지만 한 직원이 자기 차례에서 “광주 발령은 괴롭힘”이라고 문제 삼아 결국 다른 직원이 대신 내려가게 됐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회사 내 갈등을 부추기기도 한다. 노무법인 시선의 김승현 대표노무사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한 동료를 맞신고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며 “회사가 직원과 모종의 거래를 해 특정 직원에 대한 허위신고를 사주하는 사례도 있다”고 했다.
허위 신고로 치러야 하는 비용도 적지 않다. 직장 내 괴롭힘의 경우 사건 특성상 회사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따라서 로펌, 노무법인 등 외부 전문가를 불러야 할 때가 많아 비용 부담이 크다.
한국은 괴롭힘에 대해 ‘지위·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직장 내 괴롭힘’을 평가할 때 ‘지속성’이나 ‘반복성’을 따지는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주관적 해석’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허위 신고에 대한 제재 규정이 없는 점도 신고 남발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강분 행복한일 노무법인 노무사는 “어떤 행동이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난 것과 허위신고는 구분해야 한다”면서도 “유럽연합(EU)은 허위로 괴롭힘 신고를 할 경우 제재한다는 게 노사 간 컨센서스(동의)”라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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