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윤석열 대통령이 방일 이틀째 머물렀던 일본 도쿄 데이코쿠호텔. 당 지도부와 함께 윤 대통령을 찾아온 이즈미 겐타 일본 입헌민주당 대표는 “당내에 한·일 우호 의원연맹을 만들어 조만간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즈미 대표는 윤 대통령이 제시한 제3자 변제 방식의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에 대해 “한국 내 부정적인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윤 대통령이 대단한 결단을 했다”고도 말했다.
입헌민주당은 총 465석인 일본 중의원에서 97석을 차지해 1당인 자민당(260석) 다음으로 의석수가 많다. 그런 일본 제1야당 당수가 강제징용 해법에 반대하는 한국의 야당을 설득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즈미 대표는 한·일 청년 교류 활성화에 대한 지지 의사를 나타내며 “한국의 열렬한 팬인 제 딸은 독학으로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 방일 기간 일본 정치권이 보여준 인상적 장면은 또 있다. 자민당과 연립여당을 이루고 있는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는 같은 날 윤 대통령과 만날 때 대통령 서명이 새겨진 이른바 ‘윤석열 시계’를 손목에 차고 나왔다. 야마구치 대표는 지난해 12월 방한해 윤 대통령을 예방한 적이 있다.
윤 대통령과 야마구치 대표 간 만남은 당초 예정에 없었다. 대통령실은 “야마구치 대표가 한·일 협력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요청해와 전날 뒤늦게 일정을 추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을 만난 일본 정치인들은 한·일 현안을 거론하며 자국의 입장을 적극 설명하기도 했다.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는 “일본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협력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며 한국 측 이해를 당부했다.
대통령실 안팎에선 이번 방일 기간에 일본 정치권이 똘똘 뭉쳐 자국 이익을 대변하려 한 사례가 회자되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일이 과거를 딛고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에 일본은 여야가 따로 없다”며 “한국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연일 윤 대통령을 비판하며 반일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는 민주당, 정의당 등 야권의 태도에 실망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19일 브리핑에서 “역사의 큰 흐름이나 국제질서 변화의 큰 판을 읽지 못하고 너무 지엽적인 문제를 제기하거나 지나치게 과도한 용어를 동원해 정치적 쟁점을 만들려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교가에선 야당이 단순히 방일 성과를 ‘굴욕 외교’라고 깎아내리기보다는 이제라도 일본 정부와 정치권을 상대로 강제징용 배상기금에 대한 피고 기업의 참여 등 ‘성의 있는 호응’을 압박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관계자는 “일본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국익을 위해서라면 우리 야당을 상대로도 행동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며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올여름으로 예상되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한국 답방 때 국익과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위해 어떤 의제를 거론하면 좋을지 고민했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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