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77)의 위대함을 설명하는 데 ‘명장’이란 단어 하나론 부족하다. ‘죠스’ ‘E.T.’ ‘인디아나 존스’ ‘쥬라기 공원’ ‘쉰들러 리스트’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 영화사에 길이 남을 대작을 수없이 남겼기 때문이다. 농구의 마이클 조던, 골프의 타이거 우즈처럼 그의 이름 앞에 ‘역대 최고(GOAT·Greatest Of All Times)’란 수식어가 붙는 이유다.
스필버그는 어떻게 이런 걸작들을 60년 넘도록 쉼 없이 만들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을 엿볼 수 있는 영화가 오는 22일 개봉한다. 스필버그의 자전적 영화 ‘파벨만스’(사진) 얘기다.
새미는 부모를 따라 처음 극장을 찾은 뒤 영화에 푹 빠진다. 기차 충돌 장면을 인상 깊게 본 그는 장난감 기차를 사서 온갖 장면을 연출하고 카메라로 찍어본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부모의 시선은 엇갈린다. 아빠 버트(폴 다노)는 걱정하지만, 엄마 미치(미셸 윌리엄스)는 열렬한 지지를 보낸다. 엄마의 응원이 없었다면 오늘날 ‘영화감독 스필버그’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엄마의 지지를 등에 업은 새미는 항상 카메라를 갖고 다니며 일상을 촬영한다. 동생들에게 이런저런 연기를 시킨 뒤 이를 영상에 담는다. 케첩으로 피 흘리는 장면을 연출하고, 휴지로 온몸을 감싸게 해 미라 연기를 시키는 식이다.
하지만 새미는 그토록 사랑한 카메라 때문에 영화감독의 꿈을 접는다. 카메라로 찍은 장면들을 살펴보다가 우연히 봐서는 안 될 가족 구성원의 비밀을 알게 됐고, 이로 인해 갈등하게 된다. 실의에 빠진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 또한 카메라다. 새미는 다시 영상을 찍으며 한동안 놓았던 꿈을 되찾는다.
이 작품 전에도 영화를 소재로 삼은 영화는 많았다. 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시네마 천국’(1990),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바빌론’(2023) 등이 대표적이다. 대부분은 주인공이 영화감독이 된 후를 그린다.
스필버그는 감독 데뷔 후의 모습은 한 장면도 넣지 않았다. 철저히 유년 시절에만 초점을 맞췄다. 영화인을 꿈꾸는 한 소년과 그 가족 이야기를 통해 ‘역대 최고 영화감독’의 정신적 자양분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이렇게 단출하고 담담한 스토리 전개는 오히려 영화를 참신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엔딩 장면에서도 시네필이 반가워할 인물이 등장한다. 새미는 ‘서부 개척사’ ‘아파치 요새’ 등을 연출한 ‘서부극의 제왕’ 존 포드 감독(1894~1973)과 만나게 된다. 영화는 이 장면을 통해 새미에게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암시한다. 천재 감독의 여정을 알리는 세련되고도 인상적인 결말이다.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엄마 역할의 미셸 윌리엄스의 감정 연기가 압권이다. 윌리엄스는 피아노에 탁월한 재능이 있지만 꿈을 포기한 엄마의 모습 등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미치의 피아노 연주 장면들은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음악 하나도 허투루 배치하지 않는 스필버그의 세심함에 감탄이 나온다. 미국 잡지 ‘롤링스톤’은 이 영화에 “스필버그의 수많은 영화 가운데 가장 빛나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왜 이렇게 극찬을 했는지, 영화가 끝날 즈음 알게 된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