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로를 열어줄 테니 10년 뒤에는 중국에서 나오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21일 미국 상무부가 공개한 반도체지원법(CHIPS Act)의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에 대한 국내 반도체업체 고위 관계자의 평가다. 미국 정부는 중국 내 반도체사업을 당장 금지하거나 기술 업그레이드를 막는 극단적인 카드를 꺼내들진 않았다. 하지만 10년간 웨이퍼(반도체 원판) 투입량을 제한해 공장 증설을 사실상 막았다. 첨단 반도체 생산장비의 수출 규제도 여전한 상황이다. “리스크(위험) 수위가 낮아지긴 했지만 중국 반도체사업 관련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전통 반도체를 생산하는 생산시설에는 웨이퍼 투입량을 10% 이상 늘리지 못하게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현재 중국의 첨단 공정에서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반도체업계에선 예상보다 강한 조치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공장을 더 지을 수는 없더라도 투자 금액이나 기술 수준을 직접적으로 규제하지는 않아서다. 중국 공장의 기술 업그레이드를 금지하는 수준은 아니다.
초미세공정 기술이 발전하면서 웨이퍼 한 장에서 생산되는 반도체가 늘어나고 있는 점도 기업의 부담감을 낮추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웨이퍼 투입량을 유지만 해도 최종 생산되는 칩의 양은 증가한다”며 “초미세공정 기술이 진화하면서 더 작은 반도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국내 기업들은 이 규제 적용과 관련해 ‘1년 유예’ 조치를 받았다. 이날 미국 정부 관계자도 "일부 기업의 경우 사업성을 유지하기 위해 기술 수준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고 말했지만 올해도 유예를 받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기업들은 미국의 규제에 대해 신중한 의견을 나타냈다. 삼성전자는 “미국 정부의 발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 대응 방안을 수립할 계획”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국내 기업들이 중장기적으로 중국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평가가 우세하다. 삼성전자가 지난 15일 경기 용인에 710만㎡ 규모의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산업단지)를 조성하고 300조원을 투자하기로 한 것도 메모리 반도체 사업의 ‘탈중국’을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SK하이닉스 역시 지난해 10월 “생산 거점을 다변화하는 것은 중장기 시각에서 필수불가결하다”고 밝혔다.
황정수/김소현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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