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첨단 공정을 가동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10년간 5% 미만 생산 능력 확장’은 ‘신·증설 금지’나 마찬가지다. 중국 반도체 사업은 ‘현상 유지’만 하라는 것이다. 생산량의 85% 이상이 중국 시장에서 소비되는 경우 10% 이상 설비 투자가 가능하지만, 범용 제품에만 적용된다. 그나마 생산 능력 확장 기준을 웨이퍼(반도체 원판) 투입량으로 정한 점은 다행이다. 초미세공정 기술의 발전으로 웨이퍼 투입량을 안 늘려도 칩 생산량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약 68조원을 투자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사업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까지 나왔다는 점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한 셈이다.
하지만 미국이 대중 견제 의지를 거듭 내보이며 ‘10년 뒤엔 중국에서 철수하라’고 압박한 것이어서 문제가 간단치 않다. 중국 의존도 축소는 불가피하지만, 한국 반도체 수출의 40%를 담당하는 최대 시장을 포기할 수는 없다. 중국 생산시설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미국과의 추가 협상을 통해 최대한 실익을 얻어내야 하는 이유다.
이것 외에도 미국의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와 보조금 독소조항 리스크가 여전해 난관은 첩첩산중이다. 중국 공장에 대한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는 오는 10월, 1년 유예 기간이 끝나면 어떻게 될지 불확실하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정부는 다음달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를 더욱 강화하는 추가 조치를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에서 1억5000만달러 이상 보조금을 받으면 기업 상세정보를 공개하고 초과 이익은 공유하라는 ‘불평등 조항’도 넘어야 할 산이다. 가뜩이나 인플레이션 탓에 삼성전자가 텍사스에 건설 중인 파운드리 공장 건설비가 10조5000억원 이상 더 들 전망이어서 ‘배꼽이 큰’ 보조금 지급 조건을 그대로 수용할 순 없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언론조차 ‘좌파 정책’이라고 비판할 정도로 도를 넘은 반도체 패권법이 동맹국 간 신뢰를 흔들 것이라는 점을 계속 강조하고, 미국 내 우호 세력을 끌어들여 여론전도 펼칠 필요가 있다. 정부와 업계는 긴밀히 소통하면서 미국이 우리 입장을 최대한 받아들이도록 외교 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 300조원을 들여 경기 용인에 세계 최대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프로젝트도 차질 없이 진행해 글로벌 반도체 대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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