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 은행에 맡긴 돈이 무탈한지 다시 걱정해야 하는 시대를 맞았다. 은행발(發) 위기가 시작되자 미국 정부의 조치는 즉각적이고 단호했다. 놀랍게도 예금자보호 한도(25만달러)를 넘어선 예금 전액 지급을 보장하겠다고 선언했다(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파장이 일자 포괄적 보장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다시 둘러대긴 했다).
더 놀라운 건 우리 정부와 정치권의 반응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예금 전액을 보호하는 게 가능한지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한술 더 떠 일부 의원은 현행 5000만원인 예금자보호 한도를 1억원까지 늘리고, 필요에 따라 미국처럼 예금 전액을 보호할 수 있는 법안 발의에 들어갔다.
하지만 예금 전액 보호는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다. 법과 제도, 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조치다. 전액 보장은 사실상 ‘정부 예금’을 뜻한다. 마켓의 기능을 부정하는 짓이다. 예금자들에겐 잘못된 신호를 준다. 다들 금융회사의 부실 여부를 묻고 따지지도 않고 이자를 더 챙겨주는 곳에 몰려들 게 뻔하다.
다수의 소액 예금자를 보호한다는 사회적 취지에도 크게 어긋난다. 은행에 5000만원 넘는 예금을 보유한 고객 비율은 고작 2% 정도에 불과하다. 모든 예금을 보호하기 위해선 보험료를 대폭 인상하고 결국 재정까지 투입해야 한다. 혈세를 들여 금융사를 살리고, 특정 예금자의 돈을 메워준다는 논란에 맞닥뜨려야 한다. 뒷감당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위기를 걱정해야 하는 시대다. 정부와 정치권은 시장 실패를 막고 위험을 관리해야지, 국가 시스템을 위기에 빠뜨릴지도 모르는 위험을 덜컥 떠안으면 안 된다. 부디 은행에 맡긴 내 돈도, 나랏돈도 모두 무탈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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