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반도체업계 의견은 정부 주장과 좀 달랐다. 대다수가 “정부가 힘쓴 건 인정하지만 중국 공장에 대한 불확실성은 여전하다”고 설명했다. 투자 전면 금지 같은 ‘급한 불’은 껐지만 불씨는 남아 있다는 얘기다.
이유가 뭘까. 미국의 탓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지원법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엔 ‘기술 업그레이드’에 대한 명확한 내용이 없다. 미국 정부 국장급 관료가 워싱턴 특파원들을 불러 “기술 업그레이드의 필요성을 이해한다”고 말한 게 전부다. ‘기술을 최신으로 업그레이드해도 좋다’는 속 시원한 표현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듣고 싶은 말을 못 들은 기업인들은 의구심을 못 버리고 있다. 가뜩이나 미국은 ‘중국 반도체산업의 싹을 자르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한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익명보도를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이 중국을 넘어뜨리겠다고 달려들고 있는데 어떤 간 큰 기업이 ‘최첨단 D램·낸드플래시 장비를 중국에 넣겠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기업만의 기우가 아니다. 국책 연구기관 전문가들까지 “미국 정부의 가드레일 조항 발표 이후에도 규제 환경의 변화가 없다”고 진단했다. 정부 안팎에선 “미국 정부가 대(對)중국 규제를 더욱 강화할 것”이란 소문까지 흘러나온다.
기업들의 상황도 크게 변한 게 없다. 여전히 매년 10월이면 미국 정부에 가서 1년짜리 ‘중국 공장 장비 반입 허가’ 도장을 받아야 한다. 중국 D램 공장의 기술 업그레이드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얘기는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 미·중 사이에서 벌이는 기업들의 외줄타기는 현재진행형이다.
미국이 가드레일 조항을 발표하며 최악의 카드를 꺼내들지 않은 건 관료들의 노력 덕분이다. 기업인들도 “열심히 뛰었다”며 정부의 노력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공장 운영에 차질이 없을 것’ 같은 낙관론에 ‘갸우뚱’ 하는 기업인이 적지 않다. EUV 장비 같은 최첨단 반도체 장비를 중국 공장에 반입할 날이 와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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