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대한민국 성인남녀 절반 이상이 '세컨드 잡'을 꿈꾸는 시대입니다. 많은 이들이 '부캐(부캐릭터)'를 희망하며 자기 계발에 열중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꿉니다. 이럴 때 먼저 도전에 나선 이들의 경험담은 좋은 정보가 되곤 합니다. 본캐(본 캐릭터)와 부캐 두 마리 토끼를 잡았거나 본캐에서 벗어나 부캐로 변신에 성공한 스타들의 잡다(JOB多)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편집자주>
"엄청난 경험을 하고 왔어요. 죽을 때까지 한 번쯤은 해볼 법한 체험이죠. 발이 잔뜩 부어서 원래 신던 신발에 들어가기까지 한 달이 걸렸고, 머리나 피부도 전부 탔어요. 몸은 힘들지만 내면의 힐링을 받았습니다. 그 전과 후 제 삶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근황을 묻자 손미나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을 회상하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해 봄 그녀는 짐을 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많은 이들이 부침을 겪던 시기였다. 당시 손미나 역시 강한 감정의 동요를 느꼈다고 한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멀리해야 하는 게 현실이었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고, 연결되어 있는 동물이라는 걸 절실히 느꼈어요. 모든 걸 떠나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도 필요했고요. 늘 산티아고 순례길은 '지금이다!'라는 때가 오면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딱 그때였죠."
3~4개월의 준비 기간을 거쳐 총 42일 동안 800km를 걸었다고 했다. 걷고 또 걷는 고행 끝에 얻는 숭고한 가치.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마주치며 결과적으로 '진정한 나'를 찾게 되는 과정이 바로 전 세계인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는 이유일 테다. 손미나는 '이 길을 걷기 전과 후의 내가 같을 수 없다'고 표현했다.
그는 "사람들이 많은 걸 밖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냐. 근데 그것들은 이미 다 내가 가진 거라는 걸 깨닫게 됐다. 동시에 우리에게 꼭 있어야 하는 것 또한 없다는 걸 알게 됐다"면서 "마지막 3km 정도 남았을 땐 가기 싫고 슬프더라. 걷는 것에 대한 매력을 크게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연이 주는 힐링의 힘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도전 골든벨', '가족 오락관'에 9시 뉴스까지 남부러울 것 없던 삶을 살았던 손미나였다. 하지만 화려함으로 대변되던 과거와 달리, 화장기 없는 얼굴에 머리를 하나로 대충 질끈 묶고 운동복 차림으로 나타나 "요즘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닌다"며 미소 지었다.
KBS에 사표를 던지고 나온 지 벌써 16년이 흘렀다. 당시 탄탄대로를 걷던 그의 선택을 많은 이들이 만류했다. 하지만 손미나는 "갑자기 그만둔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을 열심히, 그리고 할 만큼 많이 했다는 생각이었다.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정말 좋아했지만 유리천장도 존재했고, 방송국 시스템 안에서 크리에이션할 수 없었다. 마이크 앞에만 있는 게 답답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세상이 변하는 게 보였다. 흐르는 물이 아닌 수족관에 있는 물고기가 발전할 수 있을까 싶더라"면서 "난 무대가 화려하든 초라하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그걸 믿고 회사를 나왔다. 정말 좋아하는 일(글쓰기)에 승부를 걸어보기로 한 거다. 퇴사를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며 웃었다.
퇴사 직전 1년간의 스페인 유학 경험을 담은 책 '스페인 너는 자유다'를 펴내 40만부 이상을 팔았다. 당시 판매량이 좋지 않았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냐는 물음에 손미나는 "조금 더 두려웠을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했을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책의 성공이 도화선이 된 건 맞지만 이미 넓은 세상을 보고 온 상태였다. 회사가 거북이의 등과 같아서 없이는 못 살 것 같았는데 유학 가서 보니 아니었다. 나 자체로 괜찮고 멀쩡했다. 생각이 바뀌어서 왔기 때문에 그대로 갇혀 있기엔 답답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를 나온 뒤 손미나는 파리 3년을 포함해 해외에서 6~7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렇게 '여행작가'라는 직업을 새로 얻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로는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 알랭 드 보통이 세운 '인생학교' 교장, 손미나앤컴퍼니 대표, 강연자 등으로 바쁘게 살았다. 번아웃이 올 때면 과감하게 쉼표를 찍기도 했다. 역경과 성장, 경험의 과정을 글로 옮기니 어느덧 14권의 책이 쌓였다.
손미나는 "글 쓰는 일은 자기 안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정말 좋은 직업"이라면서 "독자가 시청자만큼 많지 않아도 한 명 한 명과 깊이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고, 그들의 인생이 바뀌기도 한다. 독자에게 받는 피드백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이고 보람차다"고 전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에 도전한다. 29일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을 담은 영화 '엘 카미노' 개봉을 앞두고 있다. 손미나는 "부의 축적보다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자연을 걷고, 전 세계인을 만날 수 있고, 스페인어 전공자인 내 특기도 살리고, 재능을 나눌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봤다"고 밝혔다.
아나운서 시절 손미나는 담배 냄새가 자욱한 지하 편집실을 들락거리곤 했다. 그때부터 차곡차곡 쌓은 경험은 자산이 됐다.
"1년 차 때부터 녹화 끝나고 그냥 집에 가질 않았어요. 방송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관심이 많았고 그 생리를 잘 알아야 발전하고 좋은 진행자가 될 거라 생각했죠. 막내 PD가 편집하는 걸 보면서 이해하려고 하니 정말 진행도 더 잘 되더라고요."
이후 스페인 유학 시절 바르셀로나대학교 대학원에서 언론학 석사 과정을 밟으며 습득한 실무 경험,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으로 일하며 배운 뉴미디어 크리에이션 등이 큰 도움이 됐다.
손미나는 "이제는 엄청난 규모의 조명과 카메라, 스튜디오가 있어야만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휴대전화 하나만으로도 복잡한 과정 없이 효과적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며 미디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신기술을 배워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게 좋다. 아나운서로 10년간 방송을 했고, 이후 10년 넘게 글을 썼다. 이제는 크리에이터로서의 10년을 보내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민간 외교관 역할도 지속할 예정이다.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르 클레지오가 강연자로 나선 세종학당 파리 개원 기념식에서 모더레이터를 맡았고,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에서도 약 30여개의 식당에 한국어 메뉴 QR을 부착했다. 주요 관광지에 한국어 서비스를 위한 목소리 재능기부도 이어나갈 계획이다.
최근 스페인 국가 훈장인 시민십자훈장을 받은 손미나는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할 때 부모님께서 '남보다 더 빛나는 활동을 할 수 있을 거다'라고 말씀하셨지만 국왕에게 훈장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가문의 영광"이라면서 "앞으로 (재능을 활용한 일을) 더 열심히 잘하고 싶은 의지가 생겼다. 이걸 많은 방법으로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여전히 그녀는 삶을 여행하고 있었다. 4월 첫째 주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을 담은 책 '괜찮아, 그 길 끝에 행복이 기다릴 거야'를 발간한 후, 중순부터는 스페인의 섬 이비자, 프로멘테라에서 한 달 살기에 돌입한다. 이를 시작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한 달 살기에 도전할 계획이라고 했다. 요즘엔 북유럽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이 또 어떤 손미나 표 콘텐츠로 재탄생하게 될지 기대된다.
"다들 제게 직업이 뭐냐고 물어봐요. 장황하게 설명하게 되더라고요. 누군가 전단지 같다면서 명함을 파지 말라고도 했어요.(웃음) 글쎄요… 꼭 규정지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전 사실 그래서 더 좋은 것 같아요."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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