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대공원을 탈출해 서울 도심을 활보한 얼룩말 '세로'를 두고, "삐졌다", "반항하기 시작했다" 등의 표현을 쓰는 것은 잘못된 의인화의 전형적인 예라는 지적이 나왔다.
28일 곰 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인 최태규 수의사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동물한테 반항했다, 싸웠다, 심지어는 삐졌다고 얘기하는데 (이는) 잘못된 의인화"라며 "예컨대 동물이 무서워서 일상적인 행동을 못 하는 상황을 두고 '삐졌다'라는 표현하면 삐진 주체인 동물을 탓하게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되는 관점"이라며 "귀여운 것은 어쩔 수 없기도 하지만 사실은 동물이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인데, 그것을 보고 귀여워하는 것은 사실은 동물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 수의사는 "야생동물인 얼룩말이 사람의 의도대로 행동하지 않는 것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동물원에 사는) 야생동물들은 인위적 훈련을 통해 사람과 소통하는 방식을 학습해야 한다. 그런데 반항한다는 얘기는 훈련이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로의 탈출 소동과 관련해서는 "얼룩말과 사람의 안전이 큰 위험에 처했던 사건"이라며 "동물원에서는 그 동물의 신체 능력을 감안해서 어떤 행동을 하든지 탈출을 막아야 하는 건데 50년이나 된 동물원에서 얼룩말이 부술 정도의 울타리를 방치했다는 게 비상식적"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대공원 측이 세로의 안정을 위해 암컷 얼룩말을 데려오겠다고 밝힌 데 대해서는 "(세로가) 탈출한 것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없다"며 "얼룩말은 무리생활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사회적 관계를 맺을 대상이 꼭 필요하지만, 이 종의 사회적 구성은 암수 한 쌍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최 수의사는 "야생에서의 얼룩말은 무리가 지속해서 이합집산하는데 암수가 같이 있기도 하지만 우리 안에 수컷만 이루는 경우도 있다"며 "(세로가) 무리의 구성원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인간이 의도적으로 데려온 암컷이 세로를 만족시킬 것이라는 기대가 실패할 때는 (오히려) 사이가 좋지 않은 얼룩말이 두 마리로 늘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동물원이 실질적 역할을 하는 교육이나 보전, 연구 같은 것들이 크게 의미가 없다는 사회적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며 “대중의 눈요기를 위해 야생동물을 가두는 것이 교육적이지 않다는 주장에 점점 많은 분이 동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보전이나 연구도 굉장히 전문적이고 폐쇄적인 분야라 얼마나 정당성을 갖는지 대중들이 판단하기 어렵다"며 "장차 정당성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동물원을 장기적으로 없애는 것도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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