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만난 한 대형 증권사 최고경영인(CEO)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대낮에 서울 주택가 골목을 활보하던 얼룩말과 마주친 한 배달원의 모습과 묘하게 오버랩됐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후폭풍은 무시무시했다. 순식간에 유럽 크레디트스위스(CS) 유동성 위기로 번지면서 금융시스템이 또다시 한순간에 마비될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엄습했다. 레고랜드 사태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시점이다. 글로벌 금융당국의 빠른 대처로 위기 전이는 차단됐지만 시장 불안은 여전하다.
잘나가던 SVB의 뱅크런 사태는 금융시스템 위기가 언제 어떤 식으로 찾아올지 모른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한국 금융당국이 금융시스템 위기를 사전에 감지하고 차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SVB 사태는 이런 기조를 완화했다가 발생했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정부 시절, 강력한 건전성 감독을 받는 은행 자산 기준을 500억달러 이상에서 2500억달러 이상으로 완화한 게 SVB 부실의 빌미가 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당국의 첫 시험대였다. 미국 당국은 발빠르게 예금자 보호와 유동성 지원 조치를 취했고, 유럽 당국은 UBS의 CS 인수를 유도하면서 위기를 진정시켰다.
한국 당국이 레고랜드 사태 때 보여준 문제해결 능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SVB 사태 이후에도 시장 안정을 위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주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미국과 유럽에서 불거진 은행 위기가 한국에서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금융감독의 방향성을 고민해봐야 한다. 거시건전성 감독에 초점을 둔 미국 금융당국과 심각한 수준 차이를 드러내면서 본질적인 의구심이 불거지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이 사전 예방보단 사후 처리, 거시 감독보단 미시 감독에 치중해 왔다는 건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단적인 예로 한국 SIFI는 2021년에야 처음 선정했다. 그 대상이 어딘지, 무슨 규제를 하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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