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 ‘마술피리’는 ‘밤의 여왕’이 딸에게 자신을 위협하는 ‘빛의 세상’ 자라스트로를 죽이라고 하는 내용의 곡으로 유명하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가 극한의 고음을 통해 ‘아’ 소리만으로 노래를 이어가는 소절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만큼 대중적이다.
가족오페라, 청소년오페라라는 타이틀로 자주 국내 무대에 올랐는데 유독 서울시오페라단과는 인연이 멀었다. 22년 만에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마술피리를 공연하겠다고 했을 때 공연계의 관심이 모인 이유였다. 작년 5월 임명된 박혜진 단장이 기획 단계부터 직접 참여한 첫 번째 작품으로, 박 단장 리더십의 시험무대이기도 했다.
지난달 30일부터 나흘간 이어진 서울시오페라단의 마술피리는 ‘서울시오페라단의 저력이 십분 발휘됐지만 연출이 다소 아쉬웠다’고 요약할 수 있다. 캐스팅은 세계적 수준으로 시도했다. 반주는 이병욱의 지휘로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맡았다.
이병욱은 모차르트의 고향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19년간 거주한 모차르트 전문가다. 지휘자로서 역량은 1막에서부터 드러났다.
테너의 아리아 ‘얼마나 아름다운 초상화인가’를 지휘할 때 성악가의 호흡이 짧아지는 것을 느끼고 음악의 속도를 약간 늦췄다. 몸속에 공기를 충분히 머금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능숙한 지휘 솜씨는 왜 그토록 많은 성악가가 그와 공연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도록 했다.
첫날 공연에 타미노 역할로 출연한 테너 박성근은 독일 프라이부르크, 하노버 등의 오페라 극장에서 타미노 역으로 100번 넘게 출연한 베테랑으로 독일 테너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발음과 표현을 들려줬다. 타미노는 밤의 여왕의 딸 파미나의 연인이다.
또 한 명의 타미노 김건우는 플라시도 도밍고가 지휘한 오페랄리아 콩쿠르의 입상자답게 긴 호흡과 거침없는 고음을 뽐냈다. 파미나 역할의 소프라노 황수미도 실연에서 듣기 힘든 풍부한 성량으로 공연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주인공인 밤의 여왕은 많은 여성 성악가가 도전하고 싶어 하지만 쉽지 않은 역할이다. 세계적인 지휘자 고(故)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조수미에게 “목소리를 마치 자동 기관총처럼 써야 해서 성대에 무리가 된다”며 출연을 만류할 정도였다.
김효영은 이번 공연에서 가장 어린 스물여섯 살의 나이로 밤의 여왕을 맡았다. 그는 까다롭게 진행되는 고음을 능숙하게 다루면서 밤의 여왕의 복수심을 성공적으로 표현했다.
“배우 최민식의 연기를 따라 표정연기를 연습해 오른 파파게노 데뷔 무대.”
파파게노역할의 김기훈은 가장 큰 박수를 받았다.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등장해 웃음으로 객석을 채우게 했다. 분위기를 이끌면서도 다른 출연자들과 비교되지 않는 음량과 전달력의 차이를 보여줬다.
서울시오페라단이 자랑한 초화화 캐스팅 받춰주지 못한 무대음향과 연출
아쉬웠던 대목은 이런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를 무대시설과 연출이 제대로 받춰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피라미드 느낌을 내려던 6층 계단무대는 음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됐다. 낮은 앞쪽에 자리한 파미나와 무대 높은 뒤쪽에서 노래한 자라스트로의 이중창 장면은 높이와 거리 차이에서 생기는 성량 차이가 드러나며 극의 몰입을 방해했다.
피라미드 느낌을 자아내려던 6층의 계단무대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사악한 음향환경의 제물이 됐다. 개인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 성악의 가창(歌唱)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시각효과에만 집중한 무대디자인과 연출에서 놓친 아쉬운 부분이다.
서울시오페라단은 정기공연 장소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만을 고집해야 할까? 예술의전당이나 국립극장도 서울에 있다. 좋은 가수를 캐스팅하는것과 함께 좋은 공연 환경을 만드는 것 또한 오페라단의 역할이다.
물론 서울시오페라단의 공연을 말할 때는 예산 사정을 감안해야 한다. 세종문화회관 산하 서울시오페라단의 올해 예산은 16억원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립오페라단은 열배가 넘는 167억원이다.
하지만 예산 부족이라는 핑계를 관객들에게 댈 수는 없다. 오로지 공연으로서 평가받아야 하는 게 오페라단의 숙명이다. 서울시오페라단은 이번 '마술피리'로 가능성을 증명했다. 그 어떤 핑계없이도 좋은 공연으로 관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가능성 말이다.
조동균 기자
모차르트가 자신의 오페라 중 가장 마지막으로 완성한 징슈필(독일어 오페라)
마술피리는 악상과 줄거리에 작곡자 모차르트와 대본작가 쉬카네더가 활동한 프리메이슨의 상징과 이야기가 녹아들어 1791년 초연 당시 큰 성공을 거둔 걸작이다.
작품엔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왕자 타미노, 밤의 여왕과 세 시녀, 밤의 여왕의 딸이자 타미노와 사랑에 빠지는 파미나, 파미나를 납치한 성직자 자라스토로, 왕자를 따르는 새잡이 파파게노 등이다. 헷갈리기 쉬운 이들의 이름을 쓰지 않고 작품 줄거리를 설명하면 이렇다.
뱀만 보면 겁이 나 도망치는 심약한 왕자가 있다. 어느 밤 왕자는 길에서 큰 뱀과 마주쳐 몸이 굳어버렸는데 세 명의 아주머니들이 그 뱀을 쫓아줬다. 정신을 차려보니 허풍은 심한데 새를 잘 잡는 한 시골 총각이 자신이 뱀을 잡았다며 거짓 주장을 한다. 돌아온 세 아줌마는 거짓말한 새잡이가 말을 못 하도록 입마개를 채운다. 이때 아줌마 한 분이 들고 있던 ‘실종 소녀 찾기 전단’을 본 왕자는 실종 소녀의 사진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세 아줌마의 소개로 '금사빠' 왕자가 만난 무서운 대장 아줌마는 딸을 납치한 범인의 신상과 주소를 알려주며 그를 죽이고 딸을 구해 달라고 말한다. 만일 성공하면 나이, 학력, 재력 묻지 않고 사위로 삼겠다는 말에 왕자는 대장 아줌마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범죄 조직과 맞서려면 무기가 필요했다.
왕자는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만파식적의 유럽 수출형 격인 ‘마적’(魔笛) 을 챙겼다. 천년 묵은 떡갈나무로 만든 피리는 불면 플루트 소리가 난다. 함께 가는 새잡이도 호신용 호루라기 용도의 ‘은색 종’을 챙겼고 이 종을 흔들면 첼레스타와 글로켄슈필 소리가 난다. 둘은 마적과 은종을 들고 왕자의 신붓감을 구하는 모험을 떠난다.
삼중으로 잠겨 있는 대문을 열지 못하고 붙잡힌 왕자와 새잡이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실종 소녀는 납치 당한 게 아니라 무서운 엄마로부터 도망친 가출 소녀였다. 소녀를 보호해준 남자는 이지스와 오지리스신을 모시는 큰 종교단체의 대사제였고 오히려 대장 아줌마와 세 아줌마들이 범죄자였다.
소녀를 구하러 온 왕자의 지혜와 정의로움이 마음에 든 대사제는 그에게 묵언 수행, 불과 물을 견뎌야 하는 시험 삼 종 세트를 내고 시험을 모두 통과한 왕자는 많은 사람의 축하 속에 공주와 사랑을 확인하며 막을 내린다.
조동균 기자/한경아르떼필 사무국장 chodog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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