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타임스(FT)는 “덩샤오핑의 ‘숨어서 때를 기다린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 외교 공식이 이제 완전히 막을 내렸다”며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 및 체제 경쟁에서 우군을 확보하기 위해 외교 총력전에 나섰다”고 2일(현지시간) 전했다. 이날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3년 만에 중국을 찾아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친강 외교부 장관 등과 회담했다.
왕 위원은 하야시 외무상에게 “일본 내 일부 세력이 미국의 잘못된 대중 정책을 추종하며 중국을 도발하는 데 협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친 장관은 더 구체적으로 반도체산업을 거론했다. 그는 “과거 일본의 반도체산업을 따돌려 압박을 가했던 미국이 이번엔 중국에 그 낡은 수법을 쓰고 있다”며 “(똑같은) 고통을 겪었던 일본이 위호작창(爲虎作·악인의 앞잡이 노릇) 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미국과 합심해 첨단 반도체 장비 23개 품목의 대중 수출을 사실상 중단하기로 발표한 데 대한 비판으로 해석된다.
중국 인터넷 감독기구인 국가사이버정보판공실(CAC)이 앞서 지난달 31일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의 중국 내 판매 제품에 대한 인터넷 안보 심사를 하겠다고 한 것도 “일본과 한국을 겨냥해 경고장을 날린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상하이에 있는 반도체연구회사 IC와이즈의 왕리푸 분석가는 이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여전히 중국 내 반도체 제조 시설을 두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미국의 행동을 따르지 말라’는 경고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글로벌 외교전을 위한 토대를 2년 전에 이미 마련했다는 분석도 있다. 호주 싱크탱크 로위인스티튜트 자료에 의하면 중국의 해외 외교공관은 2021년 기준 275개소로 미국(267개소)을 제치고 1위에 등극했다. 미국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자오 통 선임연구원은 “중국은 이제 미국의 리더십을 잠식하고 중국식 통치를 촉진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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