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상암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인석 전 이랜드서비스 대표(사진)는 “직원이 성장하지 못하면 그 기업은 잘될 수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평사원으로 시작해 이랜드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그는 최근 <밸런스>란 책을 펴냈다. 신입사원부터 CEO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에 대한 그만의 생각을 담은 책이다.
인재를 중시하지 않는 기업은 없다. 하지만 대부분 ‘선발’에 초점을 맞춘다. “좋은 인재 뽑는 것 좋죠. 그런데 상황이 여의찮은 경우가 많아요. 중소기업만 봐도 그렇잖아요. 그렇다고 인재가 없다고 한탄만 하는 건 무책임한 일입니다.”
그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자신이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룹 전략기획본부에 있던 그는 2011년 이랜드서비스 대표로 임명됐다. 어려움에 처한 회사를 정상화하라는 지시와 함께 ‘해결사’로 보내진 것이다. 2007년 설립된 이랜드서비스는 그룹 계열사의 ‘백오피스’ 역할을 했다. 이랜드의 각종 매장을 비롯해 계열사의 재무, 회계, 인사 등 행정 지원과 시설 유지를 도맡아 했다.
계열사를 고객으로 둔 까닭에 매출은 안정적이었지만 그뿐이었다.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표가 안 났다. 체계가 없었고, 직원들의 사기도 낮았다. 열등감과 패배 의식이 가득했다. 이 전 대표는 회사 근처 오피스텔에 살면서 하나씩 바꿔나갔다.
그룹의 잇단 인수합병(M&A)으로 파편화된 시스템을 통합하고, 직원 교육과 연수를 대폭 늘렸다. 그는 “직원들 스스로 조직의 소모품이라고 여길 때 우리도 미래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부정적인 인식이 깊이 박힌 직원은 10번, 20번 넘게 면담하며 설득했다”고 했다.
이랜드서비스는 3년 만에 ‘평가 예외’ 조직에서 최고 평가를 받는 조직이 됐다. 7년간 승진이 한 명도 없던 회사에서 한 해에 과장급 이상 승진자가 10명 넘게 나오기도 하는 곳으로 변했다. 그는 “무엇보다 직원들이 ‘우리도 할 수 있구나’고 느끼게 된 게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2019년 그룹의 부동산·호텔·레저·건설 사업을 총괄하는 부동산BG 경영자로 내정됐으나, 건강 문제로 회사를 떠나게 됐다. 현재는 기업 컨설팅 멘토로 활동 중이다. 수백 개의 중소기업부터 전북 고창의 농부들까지 그의 컨설팅을 받고 있다.
건강을 못 챙겼다는 점에서 “자신은 프로가 아니다”고 말하는 그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그는 “CEO라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챙겨야 한다”고 했다. 안전 같은 것들이다. 그는 “자기 재임 기간에만 사고 안 나면 된다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풍조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이지 않은 곳에서 수고하는 사람을 챙기는 것도 CEO의 일”이라고 했다.
대기업 임원들은 자기만의 전문성과 경쟁력을 계속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퇴직 임원 대부분 주식 투자와 골프로 시간을 보낸다”며 “대기업의 풍족한 자원에 기대 의사결정을 할 줄은 알지만 중소기업 같은 곳에 와서 자기 힘으로 뭔가를 만들어낼 역량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나이를 먹고 보니 사람은 돈이나 권력, 명성, 네트워크 중 하나가 없으면 세상에서 버림받을 확률이 커진다”며 “젊은 세대의 ‘이지 라이프’도 좋지만 자신의 성장과 발전에도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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