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지난달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촉발된 은행권 위기가 계속되는 동안 헤지펀드 운용사들은 ‘잭팟’을 터뜨린 것으로 나타났다. 급락하는 은행주의 공매도 투자를 통해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5일(현지시간) “글로벌 헤지펀드 운용사들이 대서양 양안의 주요 은행 주식들을 공매도해 72억달러(약 9조4700억원)를 벌어들였다”고 보도했다. 금융정보 분석업체 오텍스는 “지난 3월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주 공매도 투자가 가장 큰 수익을 낸 달로 기록됐다”고 했다.
지난달 중순 SVB 파산 무렵 헤지펀드들은 이 주식을 공매도해 약 13억달러를 벌었다. SVB에 이어 시그니처은행이 도산한 뒤 ‘제2의 SVB’로 거론되던 퍼스트리퍼블릭 주식을 공매도해서는 8억4800만달러의 차익을 거뒀다. 퍼스트리퍼블릭 주가가 89% 폭락하던 시점이었다. 이들은 이후 유럽에도 은행위기가 전이되자 공매도 투자 범위를 넓혔다. 지난달 유동성 위기 공포로 주가가 약 71% 폭락한 크레디트스위스(CS)를 목표로 삼았다. CS 주식에 공매도 포지션을 취해 벌어들인 수익은 6억8400만달러에 달했다.
이들은 SVB 사태로 인한 공포가 번질수록 더 과감하게 공매도 포지션을 늘렸다. S&P 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에 따르면 3월 초 3.5%에 불과하던 CS 공매도 비중은 “CS가 UBS에 매각된다”는 소식이 알려진 20일 14%로 치솟았다. 퍼스트리퍼블릭의 공매도 비중 역시 3월 초 1.3%에서 30일엔 38.5%까지 급등했다. 피터 힐버그 오텍스 공동 창업자는 “코로나19 팬데믹 충격으로 주식시장이 붕괴한 2020년 3월에도 은행주가 폭락했지만 당시 헤지펀드들은 불확실성을 고려해 공매도에 적극 나서지 못했는데 이번엔 달랐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미 중앙은행(Fed)의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 등 각종 대책에도 불구하고 추가 위기가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계속되고 있다. 배리 노리스 아고너캐피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유동성 위기는 잡힐지 몰라도 상환 위기는 이제부터 시작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