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조약을 맺을 때처럼 한결같이 영구히 친목하기를 바랍니다'(1896년 10월 14일 그로버 클리블랜드 미국 22대 대통령 답사)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19세기 말 조선과 미국간의 외교사를 엿볼 수 있는 기록물이 복원됐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이범진 주미공사(1852~1911)의 일기 <미사일록(美?日錄)>과 일본 조선통신사 관련 기록물인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를 복원해 소장처인 단국대학교에 전달한다고 8일 밝혔다.
<미사일록>은 이범진이 제9대 주미공사로 임명된 1896년 6월 20일부터 1897년 1월 31일까지의 현지 외교활동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것을 이건호(당시 주미공사관 서기관)가 전사(轉寫·옮겨적은)한 원본이다.
<미사일록> 본문에는 주미공사에 임명된 이범진이 고종의 위임장, 국서(國書), 국기(國旗)를 받고 수도 워싱턴에 도착해 다섯 차례 미 대통령을 접견하고 우정장관과 탁지대신을 만나는 등 미국 정치인과 활발한 외교활동을 펼친 내용 등이 담겨 있다. 한미 외교의 초창기의 실태, 근대 문명과 개화에 대한 조선 선각자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귀한 글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미사일록>은 1986년 9월 11일 미국 외교부에 주미공사 교체를 알리는 내용으로 시작했다. 미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한 이범진은 1986년 10월 14일 클리블랜드 대통령을 만나 고종의 국서를 전달했다. 이범진은 클리블랜드 대통령의 답사를 기록했다.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처음 조약을 맺을 때처럼 한결같이 영구히 친목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이래 한국과 미국은 약 140년간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조약은 무너져가던 조선이 서양 국가와 맺은 최초의 수호통상 조약으로 최혜국대우와 미국인에 대한 치외법권 인정 등 조선에 불리한 내용이 적지 않음에도 미국이 조선의 안보를 보장한다는 내용 또한 들어있다. 하지만 미국은 1905년 일본과 가쓰라-테프트 밀약을 조선과의 조약을 사실상 파기했다.
이범진은 아침에 미국 학생들이 등교하는 광경을 보고 "문명 진보의 풍속이 날로 상승하니 사람으로 하여금 부럽게 한다"고도 평했고, 미국 의회의 토론 과정을 보고 "교묘하게 변론하면서 상대방을 비평하니, 부통령은 조용히 앉아서 듣고 많은 사람의 논의를 취한다. 비록 사적인 친분을 개입시키고자 하여도 조금도 용납되지 않으니, 진실로 좋은 법이고 아름다운 규정이다"고 적었다.
다른 나라 공사의 다과회에 참석하거나, 미국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풍경을 기록하는 내용도 있다. 부록에는 이범진이 1987년 1월 21일 열린 미 대통령 관저 연회에 기록한 연회 배치도와 영어단어 및 일상대화를 영어, 한자, 한글 순으로 표기한 연습장도 담겨있다.
이범진은 미 공사를 지낸 후 러시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3국 겸임 공사로 임명됐다. 1901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상주하는 초대 주러 전권공사로 임명됐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강탈되자 이범진은 공사관 폐쇄 후에도 비공식적 외교 업무를 진행해 국권 회복에 주력했다. 네덜란드 헤이그 특사 신변보호에 나섰고, 연해주 항일 의병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범진은 1911년 1월 26일 대한제국 패망에 절망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복원 전 <미사일록>과 <일동장유가> 글자 번짐과 곰팡이 침식으로 내용을 판독하기 힘들어 복원이 시급했다. 국가기록원은 1년간 기록물 표면과 내부에 침투한 곰팡이 등 오염물질을 제거한 후, 결실부를 보강해 복원·복제을 진행했다.
<미사일록>은 경기도 국가등록문화재 심의를 마치고 문화재청 심의를 앞두고 있다. <일동장유가>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지정예고(2022년 11월)됐다.
오는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은 복원물을 김수복 단국대학교 총장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한 차관은 "이번 복원을 통해 우리나라 외교사와 국문학 연구에 기여할 수 있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소중한 기록유산들이 훼손되지 않고 안전하게 영구히 보존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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