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실무를 맡으면서 현장에서 많이 혼동하는 노동법리 중 하나가 바로 근로자의 사직에 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달리, 사직은 두 가지로 구분하여 이해해야 하고, 어느 종류인지에 따라 사직 효력의 발생 시점 및 철회 여부 등 법률적 취급이 달라진다.
◆해지통고냐, 합의해지 청약이냐
법적으로 사직은 근로자가 사용자에 대하여 일방적인 의사표시로 하는 ‘해지통고’와 근로자가 사용자에 대하여 합의해지계약 체결을 청약하는 ‘합의해지의 청약’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근로자가 근로관계를 일방적인 의사표시로 해지하는 것인 반면, 후자는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합의해지계약 체결을 청약하고 사용자가 이를 승낙(수리)하면 근로관계가 쌍방 합의로 종료되는 것이다. 사용자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해고라는 일방적인 의사표시로 근로관계를 해지하거나 또는 근로자와 합의하여 근로관계를 종료하는 경우가 있는데, 근로자의 경우도 이와 유사하게 두 가지 방식으로 사직할 수 있다고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양자는 먼저 사직의 효력이 발생하는 시점에 있어 차이를 보인다. 먼저 해지통고의 경우 일방적인 근로관계의 해지인 만큼 사용자의 수리 여부가 사직 효력 발생 여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일정 시점이 경과하면 사직의 효력이 발생한다. 민법 제660조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이른바 정규직 근로계약)의 경우 근로자가 언제든지 계약해지를 통고할 수 있으며, 사용자가 해지통고를 받은 날로부터 한 달이 경과하면 해지 효력이 발생(단, 월급제와 같이 기간으로 보수를 정한 때에는 사용자가 해지의 통고를 받은 당기후의 1기를 경과함으로써 해지의 효력이 발생)한다. 물론 실무상 위와 같이 일정 시점이 경과하기 전에 근로자와 사용자 간에 합의하여 그보다 일찍 특정 시점에 사직하기로 정하는 경우도 많이 있으나, 상호간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어느 일방이 위 기간을 일방적으로 줄이는 것은 불가하다.
합의해지의 청약의 경우, 근로자가 청약하고 사용자가 승낙(수리)하는 쌍방 합의로 근로관계가 종료되는 것인 만큼 합의로 정한 시점에 근로관계가 종료된다. 예컨대 근로자가 특정 시점을 정하여 사직서 수리를 요청하면 사용자가 그대로 수리하거나 사용자가 근로자와 합의하여 사직 시기를 달리 정하여 수리하면 해당 시점에 사직의 효력이 발생한다. 일방적 의사표시인 해지통고와 달리, 사용자의 승낙(수리)가 없다면 합의해지 계약이 성립하지 않고 따라서 사용자의 승낙(수리)가 사직 효력 발생에 필수적이다. 또한 사직 시점도 해지통고와 달리 법상 아무런 규제 없이 당사자간에 자유롭게 합의로 정할 수 있다.
◆자유로운 사직의사 철회 가능 여부가 관건
근로자가 사직의 의사표시를 철회할 수 있는지를 놓고도 양자는 효력을 달리한다. 해지통고의 경우 근로자의 일방적인 의사표시로 근로계약을 해지하는 것인 만큼 근로자가 그 후 다시 자유롭게 이를 철회할 수 있다면 상대방인 사용자로서는 법적 지위가 너무 불안정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해지통고로써 하는 사직의 의사표시는 그러한 의사표시가 사용자에게 도달한 이후에는 근로자가 자유롭게 이를 철회할 수 없고 사용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반면, 합의해지의 청약의 경우 대법원은 사용자의 승낙(수리)의 의사표시가 근로자에게 도달하기 전까지 근로자는 자유롭게 이를 철회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사용자가 다른 구직자에 대한 채용을 내정하는 등 근로자의 사직의 의사표시에 기반하여 향후 필요한 준비에 나아갔다고 하더라도 아직 사용자가 승낙(수리)의 의사표시를 근로자에게 전달하지 않았다면 근로자는 사용자의 동의 없이 자유롭게 사직의 의사표시를 철회할 수 있다.
실무상 근로자의 사직이 둘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는지를 구분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가령 사용자가 근로자와 사직면담을 하여 근로자가 당일에는 사직서를 제출하였으나 사직서가 수리되기 전 근로자가 사직 의사를 철회하는 경우, 근로자의 당초 사직서 제출행위가 양자 중 어느 것으로 해석되는지에 따라 자유로운 철회 가부에 대한 결론이 완전히 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례에도 실무에선 혼선
대법원은 기본적으로 사직의 의사표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당해 근로계약을 종료시키는 취지의 해약고지로 볼 것이고, 근로계약의 해지를 통고하는 사직의 의사표시가 사용자에게 도달한 이상 근로자로서는 사용자의 동의 없이는 비록 민법 제660조 소정의 기간이 경과하기 이전이라 하여도 사직의 의사표시를 철회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사실상 추정에 불과하고, 재판실무상 사직서 원문에 기재된 문언의 구체적인 내용, 사직에 이르게 된 경위 및 해당 사업장의 종래의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직의 의사표시가 양자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심리하게 된다.
가령 사직서상에 ‘사직하고자 하니 수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고 수리를 위한 결재란이 존재하는 경우, 또는 해당 사업장의 취업규칙 등에 사직에 대한 수리행위를 예정해두고 있고 종래의 관행 역시 사직에 대한 수리를 거쳐 근로자에게 통지하여 온 경우 등의 사정이 존재한다면, 위와 같은 대법원 판례상의 사실상의 추정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하여 근로자의 사직서 제출행위가 합의해지의 청약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그에 따라 위의 예에서 근로자가 사용자의 승낙(수리)의 의사표시가 있기 전까지 자유롭게 사직의 의사표시를 철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실무상 양자를 명확히 구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법률이나 판례상 양자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로 인하여 실무상 상당한 혼선이 발생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실무상 양자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바로 근로자가 사직의 의사표시를 자유롭게 철회할 수 있는지 여부에 있다. 합의해지 청약에 있어 대법원이 근로자의 자유로운 철회권을 인정하는 취지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나, 다만 민법 제527조는 계약의 청약은 이를 철회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과연 어떠한 법적 근거로 사직에 대한 합의해지 청약에 대해서는 사용자가 승낙(수리)하기 전까지 근로자가 자유롭게 철회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측면도 존재한다.
향후 실무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혼선을 줄이고 보다 명확한 법률관계 해석과 취급을 위하여 향후 대법원이 이에 관한 현명한 판단을 내려줄 것을 기대해 본다.
구교웅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