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원·달러 환율 급등(원화 가치 하락) 현상이 심상찮은 것은 주요국 통화가 달러에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엔화 등에 비해 원화가 유독 더 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달러 약세가 곧 환율 하락(원화 가치 상승)으로 이어졌던 과거의 공식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주력 산업인 반도체 한파와 수출 부진, 경상수지 적자, 내수 위축 등 한국 경제의 ‘체력 저하’가 핵심 요인으로 지목된다.
올 들어 달러인덱스는 1.5% 하락했다. 달러인덱스는 유로, 엔, 영국 파운드, 캐나다달러, 스웨덴 크로나, 스위스프랑 등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지수다. 달러인덱스가 하락했다는 건 달러가 주요국 통화 대비 약세를 보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달러 약세 속에서도 원화 가치는 하락했다. 원화 가치는 올 들어 20일까지 달러 대비 4.4% 하락했다. 주요국 통화는 달러 대비 상승했거나 하락폭이 원화보다 작았다. 유로와 파운드는 이 기간 통화가치가 각각 2.7%, 3.1% 상승했다. 스위스프랑은 2.8%, 캐나다달러는 0.6% 절상됐다. 엔화(-1.3%)와 뉴질랜드달러(-2.7%)는 통화가치가 하락했지만 원화에 비해선 하락폭이 작았다.
무역수지는 지난 3월까지 13개월 연속 적자 행진 중이다. 4월에도 10일까지 적자를 냈다. 이에 따라 올 들어 이달 10일까지 무역수지는 258억61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연간 기준 역대 최대 적자를 낸 지난해(478억달러)의 절반을 넘었다.
대외 균형의 핵심 지표인 경상수지도 1, 2월 연속 적자였다. 경상수지가 2개월 연속 적자를 나타낸 건 2012년 1~2월 이후 11년 만이다. 유은혜 한국은행 조사역은 최근 한은 블로그에 올린 보고서에서 2월 원화 가치 절하율은 7.4%(1월 말 대비)로 34개국 중 가장 컸는데, 절하폭의 40%가 ‘무역수지 충격’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대규모 무역적자로 환율이 상승했다는 것이다.
성장률 저하도 원화 약세의 주요인으로 꼽힌다. 한은은 현재 공식적으론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이 1.6%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5월 경제전망에서 이를 낮출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최근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7%에서 1.5%로 낮췄다.
한·미 금리 차도 원화 약세의 원인이다. 현재 한·미 금리 차는 1.5%포인트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5월 초 통화정책회의에서 시장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면 이 격차는 사상 최대인 1.75%포인트로 벌어진다. 그러나 시장에선 한은이 경기 하강 우려 때문에 더 이상 기준금리를 올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한국경제학회장을 지낸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장은 “1%포인트 내외가 (외화 유출 등) 직간접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한·미 간 금리 차”라고 했다.
하지만 수출 부진이 해소되지 않으면 당분간 고환율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의 경기 회복세가 예상보다 약하고, 각종 지정학적 리스크가 증폭되면 원화 가치가 추가 하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원·달러 환율이 1330원대를 다시 돌파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4월은 배당금 역송금으로 인한 단기적 달러 수요도 있다”며 “저항선 1320원이 뚫린 만큼 1350원까지 오를 수 있다”고 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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