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는 자진 탈당, 소명 후 복당, 제명 등 조치를 통해 당이 자정능력을 강화해 왔습니다. 그러나 당헌 제80조 제3항이 생긴 뒤로는 지금까지의 노력이 허사가 돼 버렸습니다."
21일 국회의원 보좌진 등 국회 재직자들의 페이스북 익명 공간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 올라온 글의 일부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추정되는 국회 재직자 A씨는 민주당 내 분위기에 대해 "무뎌지고 있는 것 같다"고 운을 뗐다.
A씨는 "최근 불거진 돈 봉투 사건에 연루된 의원들을 당에서 조치하지 않고 있다"면서 "몇몇 의원들에 대해 의혹이 제기되거나 수사가 진행되어도 어찌하지 않고 있다. 재판받고 형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다른 당(국민의힘)의 이준석 당 대표는 당직을 잃는 중징계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당은 자정능력을 시스템적으로 강화해왔다. 윤리위에서 징계를 내리거나 자진 탈당, 소명 후 복당, 제명 등 의혹이 제기되면 당이 일사불란하게 대응했다"면서 "그러나 당헌 제80조 제3항이 생긴 뒤로는 지금까지의 노력이 허사가 됐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22일 당무위원회를 열고 대장·위례동 특혜개발과 성남FC 후원금 의혹 등과 관련해 횡령·배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명 대표의 당 대표직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민주당 당헌 제80조 제1항은 당직자가 뇌물이나 불법 정치자금 등 부정부패 관련 혐의로 기소되면 사무총장이 그 직무를 정지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단 제3항에서 '정치 탄압 등 부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될 경우 당무위원회 의결을 거쳐 달리 정할 수 있다'고 예외를 뒀다.
민주당 당무위는 검찰의 이 대표에 대한 기소가 '정치 탄압'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A씨는 "개정 취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조문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다. 검찰의 정치 탄압을 막으려면 당헌을 개정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제도를 바꿔야 할 것이 아닌가"라며 "당은 의원들이 기소돼도 버젓이 활동하게 내버려 두고 또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어디서부터 꼬인 것일까. 왜 기소된 의원들을 내버려 둘 만큼 다들 무뎌진 것일까. 극성당원이 문제일까? 당 대표가 문제일까"라며 "대선 후보가 험지 출마도 아닌 계양을을 급하게 공천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당 대표도 되었다. 당헌·당규도 바꾸고 불체포특권으로 수갑 차는 일도 면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누가 잘했고 못했는지를 고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면서 "지금부터라도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더 이상 사법 리스크, 내로남불, 체포동의안표결, 금권정치에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며 "털고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민주당 내에서는 송 전 대표가 이재명 대표의 귀국 요청에도 22일 기자회견을 열겠다며 귀국을 늦추자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탈당, 출당 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당내에선 돈 봉투 연루자를 선제적으로 엄중 조치하지 않으면 비리 정당이란 이미지를 탈피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검찰 ‘돈 봉투 의혹’ 수사 대상인 윤관석, 이성만 의원 등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된다면 민주당은 또다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민주당은 노웅래 의원과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야당 탄압’으로 규정하고 부결시킨 전례가 있다. 해당 의원들이 ‘정치적 수사’라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당이 체포동의안을 가결한다면 이 대표의 전례와 비교가 되고, 부결시키면 ‘방탄 정당’ 이미지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
어떤 결론을 도출하더라도 이 대표의 전례와 비교했을 때 이중잣대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현재 기소돼 재판받으면서도 당 대표를 유지 중인 이 대표가 남에 대한 윤리감찰을 지시하는 순간 민주당은 ‘내로남불’ 프레임에 갇혀버릴 가능성이 크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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