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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월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급락하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 한도 증액에 대한 합의가 지지부진하면서 미국 정부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가 증폭된 탓이다. 시장 내 불확실성이 커지자 유동성이 풍족한 단기 국채 매수세가 커졌다는 분석이다.
23일(현지시간) 투자 전문매체 마켓워치에 따르면 1개월 만기 미 국채 금리는 지난 21일 연 3.314%로 마감했다. 전날 단기 국채 수요가 급격히 커지며 0.5%포인트 하락한 데 이어 0.183%포인트 낮아진 수치다. 2022년 10월 이후 최저치를 찍었다. 통상 단기 국채 수요가 증가하면 금리 하락(국채 가치 상승)이 이어진다.
단기 국채 수요가 증폭된 건 미 연방정부의 자금 고갈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미국 재무부 금고가 고갈되는 시점인 'X-데이트'가 앞당겨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덴마크의 단스케방크에 따르면 현재 미 재무부의 가용 현금 규모는 2500억달러 수준이다. 부채 수준을 감안하면 당초 예상 시점인 7~9월보다 2개월 일찍 현금을 소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TD증권의 겐나디 골드버그 선임 연구원은 "지난주부터 투자자들이 부채한도 문제를 피하기 위해 1개월 만기 미 국채 수요가 커지기 시작했다"며 "7~8월에 만기가 도래하는 국채에 대한 수요는 급격히 줄고 있다"고 분석했다.
JP모건도 지난 20일 투자자 서한에 재무부를 비롯한 미국 정부의 가용자원이 8월 중순께 모두 고갈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JP모건은 "미국 정부의 현금이 모두 소진되기 2~3개월 전에 초단기 국채 시장에서 긴장 신호가 나타난다"고 해석했다.
미 의회에서 부채한도 협상이 난항을 겪으며 미국 정부의 디폴트 우려가 증폭됐다. 지난 20년 연속 재정적자를 기록한 연방정부 국가부채가 법정 한도에 도달하면 의회에서 이 한도를 증액해야 디폴트를 면할 수 있다. 지난 2021년 12월 지정한 법정 한도(31조 4000억 달러)는 이미 지난 1월 한도를 넘겼다.
미 재무부는 공공분야 투자를 지연하거나 정부 보유 현금을 가용하는 등 특별 조치로 디폴트를 피하고 있다. 하지만 오는 6월 미 의회에서 합의되지 않으면 디폴트를 맞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부채 한도를 두고 민주당과 공화당의 갈등은 심화하고 있다. 지난 19일 공화당 소속 캐빈 매카시 하원의장(사진)은 내년도 연방정부 예산을 1300억달러 삭감하는 예산안을 발표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정책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학자금 대출 탕감 등을 저지하는 게 골자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은 즉각 반발하며 조건 없는 부채 한도 증액을 요구하는 중이다. 공화당이 과반을 차지한 하원에서 예산안이 통과돼도 민주당이 과반인 상원에서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에서 부채 한도 증액 논의가 수렁에 빠지며 5년 만기 미 국채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2011년 이후 최고치인 51bp(1bp=0.01%포인트)를 기록했다. 미 국채 CDS 프리미엄은 미국 정부 디폴트에 대한 보험 구입 비용의 일종이다. 이 수치가 높을수록 디폴트 확률 크다는 뜻이다.
1년 만기 국채 CDS 프리미엄도 100bp를 웃돌고 있다. 세계 주요 국가의 CDS 프리미엄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수준이다. 만성 적자 국가인 이탈리아의 1년 만기 국채 CDS 프리미엄은 39bp에 거래되고 있다. 영국은 14bp, 국가 부도 위기를 겪은 그리스도 16bp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실제 미국에서 국가 부도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은 작지만, 유동성 위기가 증폭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단기 국채 수요가 커지게 되면 장기 국채의 유동성이 메마를 것이란 분석이다.
골드버그 연구원은 "만기가 1개월 이상인 장기 국채에 들어갈 현금이 금융 시스템을 이탈하게 되면 Fed의 준비금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며 "부채 상환일이 가까워질수록 불안정성은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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