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투자자들의 ‘빚투’(빚내서 투자) 열풍 뒤에 ‘폰지’(다단계 금융사기) 방식의 주가조작 세력이 연관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금융당국은 큰손 자금을 모집한 뒤 차액결제거래(CFD·contract for difference) 계좌를 활용해 장기간 주가를 끌어올린 ‘신종 작전 세력’으로 판단하고 조사에 나섰다.
코스닥 테마주가 아니라 대주주 지분이 높고 거래량이 적은 우량 가치주가 타깃이 됐다. 이들 종목은 지난 1~2년간 별다른 호재 없이 2~5배 급등했다. 하지만 CFD ‘폭탄 돌리기’가 끝나면서 반대매매 물량이 쏟아져 연일 하한가로 직행하고 있다. 신종 ‘빚투 폰지’로 주가가 이상 급등한 종목이 더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시장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모두 유동 주식이 거의 없는 자산주라는 공통점이 있다. 삼천리, 대성홀딩스, 서울가스 등은 도시가스 업체이고 다우데이타, 선광, 세방 등은 중소형 지주사다. 가치투자자들이 선호하던 이들 종목은 그동안 별다른 호재 없이 주가가 지속 상승했다. 폭락 직전까지 1년 동안 주가는 2~5배 급등했다. 작년 초 10만원대 초반에 거래되던 삼천리는 이달 주가가 52만원을 돌파하며 5배로 뛰었다. 2020년과 비교하면 20배 가까이 폭등한 종목도 있다. 3년 전 선광은 1만원 수준에서 거래됐는데 지난 21일 17만원을 돌파했다. 같은 기간 대성홀딩스는 19배 올랐다.
금융당국은 신종 작전세력이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단기간 테마 종목을 급등시킨 뒤 치고 빠지는 통상적인 방식과 구분된다. 이들은 의사, 변호사, 연예인 등 고액자산가의 자금을 모아 저평가 자산주 주가를 장기간 조용하게 끌어올리는 수법을 쓴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 명의의 휴대폰을 받아 CFD 계좌를 활용해 점점 세를 불렸다.
무더기 하한가를 기록한 8개 종목은 1~2년 전부터 ‘금융투자’ 창구로 매수세가 지속적으로 유입됐다. 증거금의 2.5배까지 주식을 살 수 있는 CFD 거래는 증권사 명의로 이뤄지기 때문에 금융투자 창구로 기록된다. 삼천리 등 8개 종목을 CFD 계좌로 매입한 금액만 32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종목은 급락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개인들의 신용잔액 비중도 7~15%에 달한다. 이틀 동안 주가가 50%가량 빠진 상태에서도 거래가 거의 체결되지 않았다. 이날 연속 하한가를 기록한 6개 종목의 미체결 하한가 물량은 8000억원어치에 달했다. 장기간 상승하는 가치주에 뒤늦게 베팅한 개미들의 피해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주식시장에선 이번 폭락 종목 이외에도 신종 빚투 폰지 관련 종목이 더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올해 코스닥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상승률이 높을 정도로 크게 반등했다. 2차전지, 인공지능(AI) 등 일부 테마주도 ‘오버슈팅’ 우려를 뒤로하고 폭등했다.
금융당국은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파악하고 조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이번 사건을 금융감독원 협조 없이 자체적으로 조사하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날 “이상 과열된 와중에 테마주 투자 심리를 악용한 불공정거래 혐의 종목에 대해선 신속히 조사에 착수해 엄단하겠다”고 말했다.
박의명/이동훈 기자 uim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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