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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의 주인공 이슈메일은 향유고래 머리에서 작업하던 동료가 기름이 가득 찬 고래 두개골에 빠져 죽을 뻔한 장면에서 뜬금없이 플라톤을 떠올린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현장에서 작가가 고대 철학자를 소환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상점 심부름꾼으로 시작해 농장 일과 뱃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현장’ 출신. 자연스레 비현실적인 관념의 늪에서 허우적대다 파국으로 끝난 여러 경험이 생각났을 것이다. 그런 답답한 현실이 반복되지 말라고 문학적 일침을 놓았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 요즘에는 정반대 고민이 생겼다. 과거에는 관념의 일방통행이 문제였다면, 현 정부는 ‘철학 부재’나 ‘목표 상실’이라고 지적받을 정도로 지향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가장 먼저 대두되는 문제는 ‘무엇을 하겠다’는 게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다 돼가지만, 여전히 국정의 청사진은 제시된 게 없다. 경제정책만 해도 관련 부처 차원의 모토조차 없다. ‘지역 균형발전’(노무현 정부), ‘녹색성장’(이명박 정부), ‘창조경제’(박근혜 정부)처럼 역대 정권이 뚜렷한 지향점을 제시한 것과도 대조적이다.
그저 그때그때의 이슈에 즉흥적으로 대응하는 데 그칠 뿐이다. 그러다 보니 전세 사기 대책처럼 미봉책을 나열하거나 화물연대 파업 대처처럼 용두사미 식으로 흐지부지 끝마치기 일쑤다.
때론 당연히 해야 할 의무마저 방기하는 모습이다. 연금 개혁, 전기요금 인상은 눈치만 보며 결론을 미루기만 한다. 수많은 중소기업의 생사가 걸린 근로시간제 개편안이 여론의 난도질을 당할 때, 주무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는 중소기업을 위해 어떤 행동을 했나.
지향점이 분명치 않으니 주객이 전도되는 일도 잦다. 과도한 대출 규제와 여전한 관치(官治) 탓에 신용점수가 높은 대출자가 신용도가 낮은 이보다 높은 이자율 부담을 지는 것은 더는 낯선 일이 아니다.
리더십이 방향을 잃으면 국민은 ‘선택할 자유’를 잃을 뿐 아니라 ‘공정한 대우’도 받지 못한다. 허황한 망상에 경도되는 것도 문제지만 비전이 없는 것 역시 심각한 결격사유다. 하늘만 바라보고 가는 것도 위험하지만, 땅만 보고 걸어선 목적지에 제대로 도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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