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지수는 기후 변화에 대한 세계적 관심사를 반영한 것으로, 식품을 생산할 때 방출되는 온실가스 양을 식품의 무게, 열량, 단백질 측면에서 바나나를 단위로 측정한 것이다. 예를 들어 같은 무게의 다진 소고기와 바나나를 비교하면 다진 소고기는 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바나나의 109배 배출한다. 다진 소고기는 ‘무게 바나나지수’로 109점이 되는 식이다. 다진 소고기의 바나나지수는 ‘열량’으로 54점, ‘단백질’로는 7점이다. 그동안 식품 생산이 기후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연구해 왔는데, 바나나지수는 식품의 중요한 역할인 열량과 단백질 공급까지 고려해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온실가스 배출 규모를 제시했다는 의미가 있다. 그만큼 기후 변화가 위중하다고 본 것이다.
기후 변화가 화두인 시대다. 기후 변화에 관해 주목할 만한 최근 연구 결과로 먹거리의 위협을 강조한 것이 있다. 식품 생산만으로도 ‘지구 온도 1.5도’라는 상징적인 목표가 깨진다는 것이다. 지구 온도 1.5도란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1.5도 높아지는 수준에서 온난화를 막아야 한다는 목표인데, 세계 인구가 단순히 먹고사는 것만으로 2100년까지 1도 이상을 올린다는 경고가 나왔다. 음식 중에서도 소고기나 유제품 등 소 사육에 의한 위협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동안 많이 부각되지 않은 큰 요인이 있으니 바로 쌀이다. 벼는 식물인데 무슨 온실가스를 배출하냐고 의아해할 수 있지만, 벼 자체가 아니라 벼를 재배하는 환경이 문제다. 물을 채운 논의 박테리아가 메탄가스를 내뿜기 때문이다. 육류, 유제품, 쌀이 차지하는 온실가스 영향이 식품 전체의 75%에 달한다. 현재도 전 세계 쌀 생산으로 발생하는 온실가스 양이 항공산업에 맞먹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로서는 한 가지 좋은 소식이 있다. 쌀 소비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한다는 점이다. 세계적으로 보면 아시아의 저소득 국가와 아프리카의 쌀 소비량이 늘고 있어 기후 변화에 중대한 위협으로 주목받지만, 한국의 쌀 소비량은 줄고 있다. 우리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30년 전인 1992년에 연간 112.9㎏이었는데 2022년엔 56.7㎏으로 줄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일본과 대만의 1인당 쌀 소비량이 각각 50.7㎏, 44.1㎏인 것을 감안하면 우리 1인당 쌀 소비량은 더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이미 인구가 줄고 있으니 나라 전체 쌀 소비량은 당분간 감소세를 유지할 것이다. 기후 변화 때문에라도 줄이는 것이 좋을 판에 알아서 줄고 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문제는 국내 쌀 생산이 쌀 소비량 감소를 따라가지 않는 것이다. 쌀이 낮은 비용으로 생산되고 있다면 남는 쌀을 수출이라도 하겠지만, 우리 쌀이 그런 가격경쟁력은 없다. 만약 쌀이 시장에만 맡겨져 있다면 쌀 생산은 소비 감소에 맞춰 줄었을 것이다. 하지만 쌀이 주식이고, 쌀 생산은 강수량과 태풍 등 날씨 영향도 많이 받아 정부가 공급량을 안정화하는 조치를 취한 지 오래됐다. 게다가 농산물 수입 문이 열리고 농업 비중은 감소하는 중에 거의 모든 국민의 부모 또는 조부모가 농민이었던 까닭에 농가를 지원하는 정책은 반대가 적었다. 특히 쌀 농가의 소득 보전은 가장 확실히 이어져 왔다. 다른 어떤 산업 분야에도 쓸 수 없던 정책이다.
올해부터는 농가에 직접 지급하는 보조금을 기존 쌀 외에 쌀에서 가루쌀과 밀·콩 등 작물로 넘어가는 경우에도 지급하는 ‘전략작물 직불금 제도’가 시행된다. 이런 정책을 통해 쌀 생산을 줄여간다면 기후 변화 저지에도 기여할 것이다. 결국 폐기됐지만 논란이 컸던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는 단순히 남는 쌀을 사느라 세금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 아니다. 남는 쌀을 반드시 나라가 사주면 쌀 생산을 줄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쌀에서 조금씩 멀어질 결심을 해야 한다. 나라 안에서도 나라 밖에서도 그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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