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는 자체적으로 공모 펀드를 제외한 자산운용 관련 거의 모든 비즈니스를 할 수 있고 조직도 갖추고 있다. 일례로 외부위탁운용관리(OCIO)는 전적으로 자산운용사의 영역이지만 증권사가 OCIO로 영역을 넓혔다. 판매사인 증권사가 사모펀드를 직접 운용·판매하기도 한다. 신탁을 통해 장부가 상품도 판다. ‘IMF 사태’라는 금융위기를 겪은 뒤 우리나라는 단기상품인 MMF를 제외하고 모든 평가를 시가평가화했다. 장부가라는 불투명한 구조 아래서는 나중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증권사 신탁에 장부가 평가를 허용하자 시가평가라면 몰릴 수 없는 돈들이 모여들어 금리 상승기에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운용사가 시가로 운용했다면 문제가 이렇게까지 심각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자산운용사가 생태계 환경에서 밀리기 시작하니 회사 발전을 위한 투자가 어려워지고 직원에 대한 보상도 상대적으로 약해져 인력을 충원해도 좋은 인력이 오지 않는 악순환이 이미 시작됐다. 앞으로 규제가 더욱 완화된다면 자산운용사의 고유 업무영역이 점점 줄어들 것이고 환경은 더 나빠질 것이다. 기본적으로 자산운용사는 다른 주체와 달리 거래가 발생해도 이익이 바로 나지 않고 시간이 경과해야 한다. 따라서 운용사는 단기 이익이 아니라 고객과의 장기적인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현재 그런 운용사가 있냐고 반문하지 않으시길. 앞으로 그런 운용사가 생겨나야 하는데 지금처럼 자산운용업이 개방되면 그럴 가능성조차 없어질 것이다. 결국 피해는 투자자에게 돌아간다.
자산운용시장의 바람직한 성장을 위해서는 운용사들이 자기 몫을 다하고 발전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생태계가 형성돼야 한다. 무엇보다 정책 당국자들이 자산운용업의 존재 목적과 바람직한 형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규제 완화라는 미명 아래 자유롭게 업무영역을 열어주면 앞으로 상황이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 운용사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주체도 필요하다. 투자자의 이익을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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