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정치권에서 때아닌 사자성어 다툼이 벌어졌다. 더불어민주당의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해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물극필반’으로 자신을 변호하고 나서자 국민의힘이 ‘사필귀정’이라며 공세를 취한 것이다.
물극필반은 중국 당서(唐書)에 나오는 사자성어로, ‘모든 사물은 그 극에 달하면 다시 원위치로 되돌아온다’는 뜻을 담고 있다. 검찰이 돈 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해 송 전 대표의 주거지와 후원조직 등을 압수수색하자, 송 전 대표는 이 같은 사자성어로 측근을 위로한 것으로 지난 29일 알려졌다. 당장은 검찰 수사 칼끝이 자신을 향해 오고 있지만 결국에는 반전될 것이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김예령 국민의힘 대변인은 30일 논평에서 “물극필반이라고 한 송 전 대표에게 사필귀정이라 전한다”며 “송 전 대표의 헛된 바람과 상관없이 진실은 밝혀질 것이고 정의는 바로 설 것”이라고 맞받았다. 공교롭게도 사필귀정은 지난해 송 전 대표가 정치 공세를 펼치며 동원한 사자성어이기도 하다. ‘대장동 50억 클럽’과 관련해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이 구속되자 ‘진실은 결국 드러날 것’이라는 취지로 사용했다.
송 전 대표는 사자성어를 즐겨 쓰는 대표적인 정치인 중 한 명이다. 2015년 1년간의 중국 칭화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도 ‘견위치명(見危致命·나라가 위태로울 때 제 몸을 나라에 바친다)’이라는 사자성어로 인사를 전했다. 인천시장을 지내던 때에도 ‘연비어약(鳶飛魚躍·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뛴다)’ 등의 고사를 인용해 신년사를 내놓기도 했다.
한글 전용 정책으로 일상생활에서 사자성어 사용은 줄고 있지만 정치권에선 널리 쓰인다. 간결하지만 명확하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으면서도 답하기 어렵고 곤란한 질문에 에둘러 넘어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기사 제목으로 뽑히기도 좋아 정치인이 즐겨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송 전 대표를 비롯한 운동권 엘리트 출신을 중심으로 한자어와 사자성어 사용이 잦다는 평가도 나온다. 올해 1월 문재인 정부 인사들이 정책 포럼을 조직하며 이름을 ‘사의재(四宜齋)’로 지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나치게 함축적이고 일반인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한자어를 포럼 명칭으로 썼다는 지적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사자성어를 애용하는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한자 조어인 ‘아시타비(我是他非·나는 옳고 남은 틀렸다)’를 동원해 검찰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20대 대학생 안모씨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을 써가며 서로 치고받는 게 꼴사납다”며 “말장난이 아니라 논리적인 설명을 듣고 싶다”고 비판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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