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질수록 개별 금융기관의 위험 관리가 중요해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위험관리 강화가 자칫 잘못하면 금융시장 자체를 오히려 불안하게 만들며 위기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위기 이전에 사전적(事前的) 위험관리 차원에서 보면 타당한 조치라 하더라도 위기에 근접하거나 위기가 발생한 후의 조처는 오히려 문제를 유발할 위험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현상 가운데 하나로 예금인출 사태와 함께 은행을 파산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뱅크런’이 있다. 그런데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가 약화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돈을 찾기 전에 자신이 먼저 예금 인출을 하는 것은 개인 입장에서는 타당한 위험관리다. 그러나 이런 개별 경제주체의 위험관리 행위가 뱅크런이 없다면 무너지지 않을 금융기관까지 파산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금융당국이 주변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위험관리 규제를 섣불리 강화하는 건 특히 금융시장이 불안정할 때는 위기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담보대출을 받을 때 자산가치에 대비해 대출 가능한 금액 비율을 나타내는 ‘담보인정비율(LTV)’ 관리는 중요한 금융감독 수단이다. LTV를 낮춘다는 뜻은 자산가격 대비 대출받을 수 있는 금액을 줄이는 것이기에 혹여 파산이 발생하더라도 채권자가 가져갈 수 있는 담보물의 잔존가치를 유지해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높이는 의미가 있다. 특히 시장 과열로 자산가격이 급등할 때 과도한 대출이 이뤄지지 않도록 LTV를 높이는 것은 타당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자산가치 하락이 시작되고 위기의 전조가 번지는 상황에서 LTV를 강화하면 자산 매입이 꼭 필요하거나 투자의사가 있는 경우까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이 생기면서 투자와 매입을 중단하게 되고 그 결과 자산가치가 더 하락하고 시장 상황이 악화할 수 있다.
또 하나, 개별 금융기관의 위험관리에 있어 주요 측면 가운데 하나가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적정 유동성 유지’다. 그런데 통화당국이 시중에 공급하는 전체적인 유동성을 줄이고 있어 금융시장에 긴축이 발생하는데, 감독당국이 금융기관의 위험관리 차원에서 유동성 확보를 강화하라고 하면서 사실상 규제 강도를 높이면 그 결과 개별 금융기관은 시장에서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유동성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금융시장이 오히려 불안해지며 심하면 유동성이 말라서 진짜 위기가 유발될 수 있다.
즉 개별적으로는 타당할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좋은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상황을 의미하는 일종의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라 할 수 있다. 개별 금융기관 차원의 위험관리 조처가 금융시장 차원에서는 위험관리가 아니라 위기로 진화될 수 있는 금융시장 불안 요인이 되는 것이다.
또 위험관리 적용에서 업종 특성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금융업이면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예를 들어 대중으로부터 예금을 수취하는 권한을 부여받아 공공성을 상당히 지니는 은행과 그러한 권한이 없는 비은행금융기관은 실제로 위험관리 감독의 강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비은행금융기관이라 해도 기본적으로 자산을 본인 책임하에 투자하는 개념의 투자금융업과 기간을 두고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보상을 확실히 보장해야 하는 보험업의 위험관리 강조점이 같을 수 없다.
그렇다고 개별 금융기관의 위험관리가 의미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개별 금융기관의 위험관리를 단순하게 일률적으로 관련 지표를 높이는 차원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업종에 적합한 규제 요소를 고려해 실질적인 위험관리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적합한 정책조합과 시점을 조정하는 작업 역시 함께 이뤄져야 구성의 오류를 피하고 금융시장과 경제 전반에 대한 제대로 된 위험관리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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